쿠바에서 담근 김치

쿠바 아이스크림집

by 권호영
쿠바에서 보내는 편지 #4

From Linda



에린아,

화분이 너무 예쁘네. 에린 집에 있다는 화분 사진을 보는데 갑자기 울컥!

아마도 서울 집에 있던 화분이 생각이 난 모양이야. 나도 식물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2주 이상 휴가를 갈 때면 친구에게 화분에 물 주는 걸 부탁하고 가곤 했는데. 이 곳에는 한국에서처럼 예쁜 화분은 잘 못 본 듯 해. 대신 이 곳의 화분들은 모두 재활용한 재료들이라 나름 멋있어. 못쓰는 화장실 변기를 재활용해서 화분으로 쓰는 건 정말 멋있기까지 했다니까! ㅎㅎ

나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면 식물을 다시 키울 생각이야. 아기 고양이를 잠시 키워봤지만 난 동물보다는 식물이 더 맞는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어.


집을 이백 개를 넘게 보고 계약을 몇 번이나 할 뻔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가 뿅 하고 나타나서 무산이 되는 과정을 여러 번 겪다 보니, 한국에서는 별로 필요가 없었던 나의 인내심이 거의 도인 수준이 되어가는 듯 해.

하지만 어제는 잠시 폭발을 해 버렸지.

내가 처한 현실이 너무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지 뭐야. 식탁을 손으로 한 번 '탁' 치고, 한 숨을 쉬고 나서 김치볶음밥을 하기 시작했어. 배가 고프더라고 :-)


배추김치가 잘 익어서 그냥 먹기도 좋지만 김치볶음밥을 해 먹으니 너무 맛있어. 요즘 종종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거든. 쿠바에서 김치볶음밥은 완전 호강에 겨운 음식인데 나는 이렇게 호강을 하면서 살고 있네.


요리를 하면 마음이 차분해져서 나에게 요리는 또 하나의 힐링이기도 해. 그래서 화가 나거나 속상한 게 있으면 요리를 해. 버터에 김치를 볶고 식은 밥을 넣고 계란을 톡! 하고 넣어주면 완성되니 이 보다 더 간편할 수는 없지. 근데 또 맛있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아? 엊그제 이 곳에서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놀러 와서 김치볶음밥을 해 줬더니 너무 맛있다며 잘 먹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어. 지난번에 그 동생이 고춧가루도 주고 또 매실청도 한 통을 줘서 그 보답으로 김치를 담으면 나눠주곤 해. 역시 음식은 혼자 먹는 것보다 나눠 먹는 게 제 맛이야!



전에도 얘기했듯이 이 곳에서 나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처음으로 해 본 음식이 맛있을 때인데 지난주에 담갔던 얼갈이김치가 그랬어. 이 곳에 사는 (몇 안 되는) 한국 사람들은 배추가 없어서 얼갈이로 김치를 담아서 먹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 그런데 나는 정확히 얼갈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잘 몰라서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봤어. 그리고 우리 동네에 있는 작은 야채가게를 갔더니 얼갈이 같은 건 없고 좀 다른데 약간 비슷하게 생긴 게 있더라고. 그래서 그 야채를 한 단 사 와서 김치를 담갔는데 먹어보니 갓김치 담글 때 쓰는 ‘갓’이더라고.


얼마 전에 구입해 놓았던 밀가루로 ‘밀가루 풀’도 만들고 사과나 배가 없으니 파인애플을 갈아서 고춧가루 양념과 같이 넣어서 만들었어. 하루 동안 숙성을 시킨 후 맛을 보니 ‘어머나…!’ 너무 맛있어서 혼자 감탄하고는 그 한 통을 금세 다 먹어버렸어.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보고 따라서 만드는 거지만 그동안 김치를 만들 일이 없었던 내가 여기 와서 배추김치에 이번에는 얼갈이김치를 만들고 나니 어찌나 뿌듯하고 재미난 지.. 이번 주 금요일에 영주권 신청을 하러 출입국을 갈 예정인데 영주권 신청이 제대로 잘 되고 나면 그 근처에 있는 큰 시장에서 진짜 얼갈이를 사 가지고 와서 좀 많이 담을 예정이야. 동생이 준 매실청까지 넣으면 더 맛있겠지? 맛있게 담아서 동생도 한 통 주고 나도 한 동안 먹고.. 상상만 해도 벌써 기분이 좋아지네.^^



요즈음 이 곳은 햇빛이 쨍쨍한 와중에 바람이 몹시 많이 불어서 야구모자를 쓰고 나가면 자꾸 벗겨지는 바람에 머리에 손을 얹고 모자를 잡고 다녀야 해. 바람이 세게 불 때면 간혹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허리케인이 연상돼. 보통 9월에 온다는데 올 해는 안 오길 간절히 바랄 뿐이야. 내가 처음 쿠바에 왔던 2년 전 9월에 ‘허리케인 이르마’가 쿠바를 쑥대밭을 만들어 놓아서 아바나 전역에 전기와 수도가 일주일간 없었다고 하더라고. 나는 그때 9월 27일에 쿠바에 도착을 했었는데 다행히 정리가 되고 있던 시기여서 아무 문제는 없었는데 내가 있었던 시골마을 ‘꼬히마르’ 바닷가 근처는 허리케인이 지나 간 흔적으로 거의 폐허가 되어있었지.


한국에서 이제는 유명해진 아바나의 ‘말레꼰’ 근처에 있는 집들이나 레스토랑, 바 들은 허리케인이 오면 가장 많이 피해를 보는 곳들이기 때문에, 쿠바인들의 사랑인 ‘말레꼰’ 건너편에는 멋진 건물들도 있지만 허리케인으로 폐허가 되어 그대로 방치가 된 건물들도 꽤 있어. 그래서 이 곳에서는 집 구할 때 허리케인이 왔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위치나 재료로 된 집인지도 잘 봐야 해. 그래서 말레꼰 전망의 집들이 무조건 좋기만 한 게 아니야.


요즘에는 인터넷을 말레꼰 근처에 와서 사용해. 거의 매일 말레꼰을 보는데 정말이지 늘 파란 하늘 아래에 파도가 철썩이는 말레꼰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아.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 곳에 있는 이유가 충분히 될 만큼…


최근에 내 마음을 좀 가다듬을 일이 있어서 ‘병법 노자’를 다시 읽고 있는데 역시 좋은 책만큼 좋은 친구는 없는 것 같기도 해. 특히 이 곳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은 사랑을 주어도 그 사랑으로 채워질 수 없는 아련한 외로움이 있기도 하고 그동안 살았던 환경과 삶의 패턴이 너무 달라져버려서 가끔은 ‘내가 뭐 하고 있지? 잘 살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거든. 그럴 때 이런 고전을 읽으며 나를 다시 돌아보고 가르침을 얻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걸 느끼게 돼. 그러고 보면 책이, 글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은 참으로 위대한 거야.

다음 달에 이곳을 방문할 동생이 가져오는 내가 소장했던 책도 기대되고. 여기에 있으면 아쉬운 게 많지만 그중에서 책이 제일 아쉬워. 아직까지 아날로그 세대여서 그런지 E-BOOK 보다는 종이책이 더 좋아서 종이책을 읽다 보니 효율성면에서는 좀 떨어지는 듯 해. 아마도 언젠가는 e-book으로 갈아타야 할 때가 오겠지만 그전까지는 열심히 아날로그 생활을 즐기려고 해.


전 세계에서 어쩌면 가장 아날로그의 삶이 지배하는 곳에서 살고 있어서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여러모로 생활이나 커리어 면에서는 뒤쳐질지 모르지만 이 곳도 언젠가는 변할 테니 지금 이 아날로그 생활을 누릴 수 있을 때 실컷 누려야지. 언젠가 이 생활을 아주 그리워할 수도 있을 테니.



P.S.

오늘은 해는 쨍쨍해도 바람이 불어서 그늘에 있으면 덥다는 걸 크게 못 느끼는 그런 날이야. 오히려 선선해서 기분 좋은 그런.. 그늘을 벗어나는 순간은 다시 뜨거운 여름이지만:-)

부부가 아니랄까 봐 나도 점점 피부 색깔이 조단이랑 비슷(?)해져서 설화수 쿠션 27호가 완벽하리만큼 아주 잘 어울리고 있어. 설화수에 27호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

백옥 같은 피부의 에린이는 아마도 21호가 맞으려나? 훗(에린이 버전)


쿠바의 아이스크림 가게 사진을 보내줄게!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4


From Erin


훗.이라고 웃는 형태가 나의 버전이라는 언니의 말에 흠칫 놀랐다가 다시 훗. 하고 웃어버렸어.


언니의 이전 편지가 있지만 이 편지로 먼저 업로드하기로 결정했어. 내가 보냈던 식물 사진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기로 하고 또 요즘 언니가 처한 현실 속에서 언니가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아서.

<쿠바에서 온 편지>를 읽는 독자들이 언니를 많이 응원해주고 있거든.


언니는 조단의 사랑을 무한대로 받고 있지만, 타지에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난제를 풀어나가며 겪는 역경(?)을 이겨내는 건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잖아. 서울에서나 쿠바에서나 슬기롭게 차근차근 해결해가는 모습을 보며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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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5월은 사랑스럽지.

지난 주말에는 삼청동 나들이를 다녀왔어. 제이와 함께 전시관도 둘러보고, 서울옥션에서 들려주는 그림 경매 강의도 들어봤어. 물론, 그림 경매는 내 삶에서 없을 이야기인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혹은 그런 비슷한 느낌의 그림을 사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해봐. 서울 언니 집에서 언니가 좋아하는 작가나 지인 작가의 그림을 구입한 후에 나에게 그림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해주던 게 생각난다. 지금 이사 온 우리 집에도 그림이 필요해서 고민 중이야. 제이는 내가 찍은 사진 중 하나를 크게 인화하는 게 더 좋다고 성화지만.

마음 같아서는 내가 한번 그려보고 싶은데, 웃음이 먼저 나오지? 벌여놓은 일들이 많으니 전부 다 욕심부리면 안 될 것 같아.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는 걸로 만족해야지.


오랜만에 찾은 삼청동은 여전히 화사하면서도 따스했어. 꽃 같은 색깔의 한복을 입은 어여쁜 사람들과 세련된 편집숍에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 오래된 간판을 달고 수년째 떡볶이 장사를 하는 풍년 쌀 농산도 그 자리에 있어.

몇 년 사이 발전한 한국 기념품들에 정신이 팔려 한참을 서성이다 핀 배지 몇 개를 구입했어. 시원한 메밀국수를 먹었고, 소격동 37번지라는 이름을 가진 아담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그리고 같은 거리를 무작정 거닐었어. 마치 가게 주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면 나를 알아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만큼 같은 거리를 여러 번 걸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었지.


언니가 빨리 집을 구하고, 하려고 계획한 일들이 자리를 잡고, 내가 쿠바에 놀러 가고, 다시 언니가 서울에 놀러 오는 날을 기. 대. 해.



P.S.

언니가 그립다던 통영에 다녀온 사진을 몇 장 첨부할게.

동피랑에 올라 정상 중간쯤 자리 잡은 카페에서 찍은 사진이야. 팥빙수 하나를 주문하고 보니, 메뉴에는 없던 맥주캔이 냉장고에 있는 거야. 내 레이더망에 걸린 거지.

"메뉴판에 없는데 이건 얼마예요?" 하고 여쭈니, 주인 할머니께서 "3000원만 줘요. 더는 못 받겠네." 하시더라고. 으응? 왜 가격을 모르시지?


테이블로 돌아와 캔을 땄지. 쏴-하고 시원하게 내려진 맥주를 마셔보니 그 날 따라 정말 목 넘김이 부드럽고 맥주가 맛있더라고. 그걸 보던 옆 테이블에 계신 아주머니께서 웃으며 말씀하셨어.

"오늘 어머니랑 저녁 식사하면서 마시려고 가져온 맥주를 어머니가 파셨네."

"하... 이럴 수가! 죄송해요.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 마음대로 파셨으니 괜찮다고 손사래 치셨지만 죄송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더라고.

그날은 맥주 한 캔으로는 정말 아쉬운 더운 날이었는데, 이제 다섯 캔 밖에 남지 않은 맥주를 보면 얼마나 아쉬우셨을까... ^^

비슷해 보이지만 여긴 서피랑 : 박경리 문학 축제가 열리고 있었어.
통영의 작은 독립 책방, 봄날의 책방


보여주고 싶은 사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줄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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