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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Jun 19. 2020

슬픈 소식은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뇌종양 간호일기 #1

2020년 1월 쿠바여행 전부터 증상이 있었다...





2020.5.4. 월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가 먼저 결과를 들으심)


“병원에서 전화 받았어? 제이 검사 결과 들었어? 놀라지 말고 들어.”라고 시작한 엄마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분명 떨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나쁜 일 중에 최악은 아니었다는 것과 그래서 나는 생각보다 담담할 수 있었던 것, 그 이유는 그 병명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치료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살아오면서 나는 ‘큰’ 일에는 이렇게 굼뜬 반응을 보이며 어찌할 줄을 잘 모르곤 했다.


나는 걱정에 관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사서 걱정을 하는 스타일이지만 희한하게도 ‘어떠한 형태’의 걱정은 모르는 척 뒤로 미뤄놓기를 하는 것이다. 그 어떠한 형태라 함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물리적 압박일 경우가 많았는데, 사실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걱정을 하지 않는 척 즉, 모르는 척을 함으로써 대면을 외면하는 일이다. 미루는 습성과 비슷하다.


전화를 끊고 나는 제이에게, “저번 (뇌 MRI)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염증 같은 게 있어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대.”라고 말했다. ‘종양 tumor’이라는 단어를 내 마음대로 ‘염증’이라고 바꾼 것도 모자라, 염증 ‘같은’ 것이라 얼버무리고는,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거짓말 비슷한 것을 해버린 나를 바라보는 제이를 바라 보다가 눈물이 스르륵 흐르고 말았다.


아픔의 정도와 상관없이 ‘당신은 아프다.’는 말을 당사자에게 내뱉으며 나는 뇌의 신경 어느 부분을 건드렸고 ‘그래서 눈물이 흐른 걸까.'라는 생각을 빠르게 하면서, 제이의 뇌에 있다는 시신경을 누르고 있는 그 염증 아니, 종양의 크기가 매우 작고, 악성이 아니고, 그래서 빨리 제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이를 꼭 껴안았다.


“아니, 별것도 아닌데 왜 울고 그래.” 라며 나를 더 꼬옥 껴안아주는 제이는 “괜찮아.”를 연발하며 수술하면 괜찮아질 거라 나를 다독였으나, 그의 속마음은 어땠을지 알 길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더 스트레스를 받거나 걱정할까 봐 그게 걱정이라며, 괜찮다 괜찮다 말해주는 그의 눈을 한동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오늘은 5월 6일인데, 이 짧은 일기를 쓰다가도 많이 울어버렸다. 제이의 병상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과연 해낼 수 있을지 미지수-






2020.5.5 화


우리 부모님과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엄마에게 미리 문자를 보내서 “어차피 내일모레 병원 가면 다 알게 될 텐데 오늘은 제이가 아픈 것에 대해 말하지 말자.”라고 언질을 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좋다가도 안 좋기도 한 여느 중년의 부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계신데, 나를 일찍 가진 바람에 엄마 아빠 둘 다 본인의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항상 그게 죄스러웠다. 무언가 하나라도 더 잘해드리지 못하는 것, 그건 겨우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면 되는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자책, 자식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그 마음에 따뜻한 말 한마디 대신 툴툴거리는 말투가 먼저 튀어나오는 것을 향한 자책을 하며 살다 보니 그게 자꾸 눈물이 된다.


엄마와 아빠는 진짜 먹고 싶은 게 아닌 것 같은 메뉴를 고르고, “한 번도 안 먹어본 거라 먹어 보고 싶었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먹고 싶은 메뉴를 다 시키지도 않으면서 결국 너무 많지 않냐고 말하는 딸의 눈치를 보기도 하면서 배가 부른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맛있다고 배부르다고... 말하는 그런 엄마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잠깐 나와 둘만 있던 순간에는 “병간호하는 일이 힘들 텐데 엄마 아빠가 많이 도와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여전히 엄마는 내 걱정을 많이 하는구나. 나는 “괜찮아. 병간호 도와주고 와 줄 사람도 많아.”라고 답하며, 그렇게 뻔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직 실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만 했다.


밥을 먹고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카페꼼마에 갔는데, 내가 쓴 책이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나는 순수하게 기뻐하고 사진을 찍으며 또 기뻐하며 그런 철없는(?) 행동을 혼자 하고 있었다.



집에 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깝다고 괜히 차를 놓고 왔네.”라고 말하면서도 합심하여 우리는 “괜찮아. 걷다가 또 뛰어가지 뭐.” 하며 뛰었다.

건널목 앞 건물의 차양 아래서 잠시 쉬는 동안 엄마가 “엄마는 비 오는 날 좋아해. 엄마가 비 오는 날 좋아하는 거 몰랐지.”라고 말을 꺼냈는데, 나는 “그래? 몰랐어.” 라던가, “나도 좋아해.”라던가 라는 대답 대신, 굳이 “비 오는 날은 누구나 다 좋아할 걸. 비 오는 날 창 밖을 바라보는 거 다 좋아하잖아.”라고 밉게 말해버렸고, 엄마는 눈빛이 흔들렸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특히 더 비 오는 날을 많이 좋아해.”라고 말했다. 그때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며 “빨리 뛰어, 너 춥겠다. 빨리 뛰어 가자.”라고 나를 생각해주는 말을 하셨는데...


이런 말들은 왜 밤이 되어서야 다시 생각나고 미안해지고, 그러나 다른 일들로 인해 다시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그 누구의 탓도 아닌 과거의 일들로 인해 아프고 상처 받고 다시 위로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는 걸까. 아프지 않은 ‘뇌'를 가진 사람의 존재가 문득 신기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나는 엄마를 생각하면 잘 울어버리는데, 제이 얘기를 하다가 그만 제이 얘기를 외면하고 엄마 얘기를 쓰다가 이러나저러나 많이 울어버렸다.






2020.5.6 수


제이는 출근을 했고, 내일 병원을 가기 위해 휴가를 낼 텐데 기분은 어떨지, 왼쪽 시야가 더 흐려졌는지, 다른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았는지 궁금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제이는 내가 아침을 먹었는지, 요즘 내가 먹고 있는 이비인후과 약을 잘 챙겨 먹었는지, 그래서 먹었다고 하면 잘했다는 칭찬을 해주며 하트를 보내주었다.


제이는 평소에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잘 챙겨주어, 사랑 자랑대회 같은 것이 있다면 나는 분명 1등을 하고 말게 분명하고, 그래서 평소에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는 어디에서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누가 봐도 자랑이고, 부러울게 뻔하고, 그런 질투를 불러일으킬만한 일을 굳이 할 필요 없게 때문인데, 그럼에도 우리의 달달함을 알아챌 수밖에 없는 가까운 지인들은 “그만해라.” “신기하다.”같은 말을 하며 질투인지 부러움인지 알 수 없는 핀잔을 하곤 했다.


제이 혼자 출근을 하고 나 혼자 집에 있으려니 제이가 더욱 생각나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눈물이 자꾸 나온다. 뇌종양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마음이 심란하다. (외래가 잡힌 5월 7일까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책을 읽어야겠다.




저녁에 제이가 퇴근을 하고, 밥을 먹고,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함께 책을 읽었다. 우리 집도 책 읽기에는 최적의 공간이지만 가끔 이렇게 공원에 나와 함께 책을 읽는 재미는 뭐라 꼬집어 말하기 힘든 소소한 행복이다. 이제는 이렇게 책을 읽으며 맥주 한 캔 함께하는 즐거움은 잠시 접어둬야 하겠지. 술은 건강에 좋지 않겠지만 특히 뇌종양 수술 전후에는 평생 금지라고 보면 된다. 수술 예후가 좋아 건강해진 사람도 다시 술을 마셨다가 응급실 간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동안 술은 종류별로 원 없이 마시고 살아왔으니, 제이와 함께 금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다...(라고 썼지만 지키지 못했다.)







*5월 7일 목요일 일기는 다음편에 가져올게요!
*제이는 현재 수술 잘 마치고, 회복중이에요.
*잊고 싶지만 잊지 않을 시간의 기록을 공유합니다
: 비슷한 상황의 글을 읽고 저도 도움을 받았거든요!
*보고싶은 브런치 작가님들, 놀러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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