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rin Chon Oct 12. 2022

매일 : No.73

2022년 10월 12일

Day 144, No.73, 전이린, 종이 위에 색연필, 21cm x 29.5cm, 2022

빛이 있기에 우리가 컬러를 구별하고 또 아름다움을 즐기지만, 빛 때문에 컬러는 결국 바래고 색을 잃게 된다. 나는 내 드로잉이 유기적 생명력을 가져서 사람처럼 늙어가기를 바란다. Archival 종이를 써도 언젠가는 가장자리부터 노랗게 빛을 머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소멸의 과정이 하루 이틀에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요즘 물감들은 너무 좋아서 수십 년 길게는 100년 이상 변색이 없다. 피부 관리하듯 관리를 해주면 더욱 오래 보존된다.

연필은 대표적인 내광성이 좋은 매체이다. 흑연과 점토로 구성된 연필심은 구성비에 따라 날림이 있거나 종이에 고착성이 떨어질 수는 있어도 빛에 바래지는 않는다. 사실 빛에 바래는 것은 종이 쪽이 더 심각하다. 다행히 종이는 사람보다는 더 아름답게 늙는다. 주름도 없고 단지 모든 컬러가 자기주장을 내려놓고 서로 어울림에 동참하도록 분위기를 맞춰준다.

그래도 작품을 판매하는 입장에서 색이 금방 바래는 건 프로답지 못하다. 적어도 손자까지는 즐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색이 바래기 시작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색이 몽땅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때부터 점점 바래기 시작한다는 얘기이다.

요즘 색연필을 테스트 중이다. 나는 색연필처럼 이미 만들어져서 내가 전혀 컨트롤할 수 없음이 좋다. 문제는 내광성이다. 기본적으로 안료가 오일에 섞이면 내광성은 좋아진다. 그런데 색연필은 오일 베이스도 있지만 발림성이 좋지 않아 주로 wax를 섞는다. wax를 섞으면 부드러워 종이 위에 잘 발리지만 디테일한 표현은 어렵다.

색연필계에 에르메스라는 스위스제 Caran D'Ache Luminance 6901 색연필을 최근에 구매했다. 가격은 이게 색연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가격이다. 그러나 100가지 색 중에서 90% 이상이 백 년 무변색을 보증하는 6901 등급을 받았단다. 색연필 중에는 유일하다.

컬러 차트를 만들면서 보니 내가 원하는 경도는 아니다. 나는 더 단단하고 섬세했으면 했다. 그러나 컬러 성격은 딱 내가 좋아할 만한 톤다운된 조용하고 나서지 않는 색감이 주를 이룬다. 어쨌거나 당분간은 색연필을 사용해서 그릴 때 이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비싸도 할 수 없다. ㅠㅠ 몇 년 만에 변하기 시작하는 재료를 쓸 수 없으니까.

컬러 차트를 만들고 보니 다른 브랜드의 색연필에도 욕심이 생긴다. 색연필만큼 그린다는 것에 기쁨을 줄 수 있는 매체는 (적어도) 내겐 없다.

이걸로 뭘 그리나? 아... 점... 점 그려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 No.7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