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지? 하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난달에 구입한 책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가 나의 흥미를 유발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몸에 관한 책을 즐겨 읽는다. 몸이란 결국 나와 세상을 구분하는 실체가 아닌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나'라는 존재이다. 나라는 자의식이 존재하는 곳은 필연적으로 몸의 한 부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내가 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인 것 같다. 피부라는 경계를 중심으로 그 안은 나이고, 그 밖은 세상이다. 그러나 몸이 곧 나라고는 할 수 없다. 몸은 나라는 자의식과 관계없이 존재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몸의 물질적 특성으로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몸이 정신에 종속되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는 말은 사실 몸에 대한 폄훼이다. 정신이 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몸의 존재 방식은 생존이다. 이 책의 추천사에서 박연준 시인은 '회복하려는 몸의 속성, 몸의 의지'를 언급하면서 '몸은 절대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회복하려는 몸의 속성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다. 죽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도 몸은 삶을 포지 하지 않는다. 손목을 칼로 긋는 순간, 삶에 대한 의지는 끝이 나지만, 그 순간에도 피부과 혈관은 치유의 과정에 돌입한다. 몸은 살고 싶어 한다. 몸의 의지는 '나'의 의식과 상관없이 내 몸을 주관하는 내가 아닌 나일까.
몸이 나를 구성하고 내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계기는, 몸의 어떤 부분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이다. '살갗 아래'는 토머스 린치 외 14명의 저자들이 몸의 한 부분을 정해 그에 얽힌 자신들의 경험을 풀어놓은 책이다. 콩팥이 아픈 사람은 온갖 관심이 콩팥에 있다. 그들에게 콩팥은 내밀한 윤리와 감정적 충동이 자리하는 양심의 상징이라고 까지 생각한다. 여드름으로 고생한 사람은 피부에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중요도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 나름의 복잡한 철학을 만들어 낸다. 천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신체 기관은 폐이며, 들숨과 날숨이 자리바꿈 하는 이곳은 '일상의 고됨을 내뱉고 아름다움을 다시 채우는 '시'와 같은 존재이다.
나에게 신체의 한 부분을 주제로 글을 써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눈에 관해서 쓸 것 같다. 눈은, 뇌의 해석에 의존하는 감각 기관 중에서도 가장 주관적인 기관이다.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리고 철저히 경험에 의존한다. 이 책에서 눈에 관한 이야기를 쓴 시인이자 소설가인 아비 커티스는 신학자 존 훌의 말을 이렇게 인용한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육체를 투영한 하나의 세상(a world)에 살고 있다. 그들의 세상은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세상(the world)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세상이다.' 정말 그렇다. 내가 보는 세상은 '나'라는 경험체가 알고 있는 세상일 뿐이다. 그런데, 그래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내가 보는 세상을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도록 재현하는 것, 그러니까 예술이 하는 일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