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Erin Chon Mar 20. 2023
그땐, 아기를 낳지 않을 옵션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혼했으므로 아기가 생겼고, 낳았다. 아이를 낳은 후의 삶은 내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내 앞에 우뚝 섰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유학길에 올랐을 적 품었던 원대한 포부와 구체적 계획들은 궤도를 벗어났다. 1년 4개월 만에 연년생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 정도로 아이들은 예뻤다. 엄마 엄마 부르며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은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무엇을 만들어 줘도 오물오물 잘 먹었다. 무럭무럭 크는 걸 보며 나에게 이런 축복을 주신 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아이들이 아플 땐 심장이 찢어지듯 아팠고,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느라 상처받을 땐 억장이 무너졌다. 엄마였기 때문에 내 몸의 오감이 열렸고, 나는 아이들을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내가 아기를 낳지 않을 옵션이 있다는 자각이 그때 있었고, 그래서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이를 낳는 것은, 엄마로서 희로애락이 종합선물로 들어있는 행복을 누린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부모의 선택에 의해서 자신은 선택하지도 않은 삶을 얻게 되는 자식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나는 사랑은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창조한 신이 인간과 맺는 관계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책임이며, 신은 그 사랑 때문에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모든 환경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부모가 신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어쩌면 비슷한 책임을 갖게 되는 것 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내 선택의 책임을 충실히 하고 있나?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갈 세상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다. 이 책임감의 무게를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낳지 않을 선택을 했었을지도 모른다.
장일호의 산문집 '슬픔의 방문'은 이렇게 까지 사적인 이야기가 이렇게 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한 번씩 생각해 보아야 할 공론으로까지 승화시킬 수 있는지 감탄을 하며 읽은 책이다. 가난의 문제, 여성의 문제, 노동의 문제, 취약계층의 정치적 배제의 문제, 기후 문제 등등 기자로서 살아온 그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모든 관심사를 총망라한 글들로 채웠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이야기는 바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저자의 고민을 담은 '한 사람이 다음 사람을 이 세계에 데리고 오는 일'이었다. 임신을 망설이는 그녀가 임테기의 한 줄을 확인하며 느꼈던 그 안도감과 실망감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느끼며 그를 닮은 자식을 '갖고' 싶은 육체적 욕망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아름다운 본능이지만, 그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글로 쓰는 저자의 입장에서 쉬운 선택은 아닐 테니까.
이 선택은 장일호 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여성이, 아니 '한 사람이 다음 사람을 이 세계에 데리고 오는 일'이 가능한 모든 성인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아이를 낳을지, 아니면 낳지 않을지 고민한다는 것은, 적어도 다가올 아이들의 세상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므로. 나에겐 이미 지나간 선택의 문제이지만, 지금 이 선택 앞에서 자신을, 또 하나의 생명을, 그리고 세상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좋은 선택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