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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Chon Aug 15. 2022

매일 : No.15

2022년 8월 15일

Day Eighty-Six, No.15, 전이린, 종이 위에 색연필, 21cm x 29.5cm, 2022


나도 누구나 처럼 그림 앞에 서면 당혹스럽다. 평생, 화가로 살아왔는데 그림은 내게 친절한 적이 없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나는 대부분 짐작할 수 조차 없다. 나만 보지 못하는 것일까? 보이는 것 너머에 숨겨져 있는 비밀스러운 사연을 나만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아는 그림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모르는 그림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었는데,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 그림이 만들어질 때 그곳에 있지 않았고, 그 그림이 계획될 때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그림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찾는다.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고, 내가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림을 떠날 수 없다. 그림은 결코 내가 찾는 것을 내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림 앞에 서 있는 한, 나는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한 구도자(seeker)로 남을 것이다. 나는 그림 앞에서 작아진다. 


Day Eighty-Six, No.15, 전이린, 종이 위에 색연필, 21cm x 29.5c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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