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게 아니란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직전 회사에서 맡았던 직책은 GOG(Global Operation Group)의 그룹장이었다. 우리말로 하면 글로벌 운영 그룹이라고 할까(그래봤자 '운영' 빼고는 다 영어). 흔히들 Operation = 운영으로 번역하고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히 그렇게 쓰여서 그런지 의심하지도 않는다. Operating System이 운영체제로 번역되면서 익숙해진 탓일까? 운영체제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전에는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지 못하는 짧은 식견이 안타깝다. 어쩌면 Management = 관리 처럼, 흔하게 쓰이는 '한국식 회사 영어'인 것도 같다(소위 Konglish와는 다른 '한국식 회사 영어'는 다음 기회에 또 쓸 일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면 (사전에 따라 다르겠지만) "운영"은 풀이에 올라 있지도 않고, 그나마 가까운 "운용"이 6번째 표제어로 올라있다(네이버 영한사전 기준). 진짜다, 찾아보시라.
클라이언트의 글로벌 브랜드 사이트를 운영, 관리, 제작하는 일을 하는 조직인데, 사실 마케팅 대행사에서 주로 하는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SI나 컨설팅 에이전시들이 주로 하던 업무였지만, 웹사이트가 디지털 브랜드 캠페인의 중심이 되면서 그 축이 마케팅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마케팅 대행사에서 주로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기존에 기획자로, 또 AE로 일하던 친구들을 데리고 이 "운영" 업무를 한다는 건 뭐랄까, 공연을 기획하고 앞에서 무대를 연출하던 사람들을 백스테이지로 끌고 와서 무대 전환을 위한 가벽을 치고, 무대 의상을 꼬매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아니면 건축 설계도면을 그리던 이들을 데리고 와서 철근 용접을 하고 벽돌을 쌓게 하는 거랄까. 그러다 보니 일손은 늘 부족한데 사람을 뽑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채용 공고를 낼 때 JD도, 심지어 Job Title도 쉽게 정하지 못했다.
결국 새로 채용하는 인원들은 AE(말 그대로 "Aㅏ! E 것도 제가 하나요!"의 AE랄까) 직군으로 뽑았지만, 이력서를 뒤져가며 찾은 사람들은 이전에 광고/마케팅 대행사에서 AE를 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마케팅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던 이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늘 HR과 이 사람이 적합하네 아니네를 두고 입씨름을 해야 했지만, 그렇게 믿고 뽑은 친구들은 맡은 업무를 잘해주고 있기에 나름의 "운영 AE"라는 새로운 세부 직군을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운영을 이해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영이란 게, 첫 바퀴를 돌리는 데에는 많은 힘이 들어가지만 한 바퀴, 두 바퀴 돌리고 나면 관성에 의해 수월하게 돌아가는 맷돌처럼 하염없이 돌리고 있는 지루한 일이 되고 만다. 이따금씩 덜 불려서 걸리는 콩을 걸러내고 마찰열이 생기지 않도록 물을 졸졸 부어 넣어주는 정도의 변주가 있을 뿐.
처음에는 생소한 용어와 시스템, 플랫폼, 층층이 얽힌 프로세스에 압도되지만 하나씩 배워나가 몸에 익게 되면 그때부터는 루틴한 일상이 계속된다. 물론 자잘한 사고도 끊이지 않고,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큰 이벤트가 있을 때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많은 일이 한꺼번에 몰리기도 하지만 결국 다 큰 틀에서는 루틴의 범주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니까.
이렇게 얘기하고 나면, 운영은 참 못 할 짓이다.
재미도 없고 새로운 것도 없고, 무엇보다 배움과 성장에 목마른 한창 커리어를 쌓아갈 젊은 친구들에게 운영 업무는 앞으로의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정체의 시기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면담을 할 때마다 이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 그룹장의 직무 중 하나였다. 특히 운영이 가치가 없게 느껴진다는 말을 들을 때면 이 길로 초대한 것이 너무나 미안하기도 했다. 멋진 클라이언트의 이름과 방대한 규모의 업무 스케일을 보면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한 부분만을 맡아 정해진 일만 계속하다 보면 누구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운영이 무엇인지 얘기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떠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