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약물치료의 진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다, 약에 중독된다, 의존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들을 종종 듣습니다. 얼마 전 사회 공포증으로 제게 자문을 구한 고등학교 친구 역시, 치료를 권하자 정신과 약을 먹어도 괜찮은지,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닌지 물어왔습니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중년의 우울증 환자분들은 우울증 약이 치매를 유발한다고 들었는데 괜찮은 것인지 걱정 어린 질문을 하시곤 합니다. 중독이나 의존성을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그럴 때 제가 지인들과 환자분들께 설명하는 내용을 적어 보고자 합니다.
“저는 눈이 좋지 않습니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컴퓨터 모니터나 책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제가 안경을 쓰는 것을 두고 안경에 의존한다거나 중독되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안경을 20년 넘게 써 왔고 불편할 때도 종종 있지만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개의 정신건강의학과 약물도 안경과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눈이 그렇듯이 환자분의 뇌에서 기분을 또는 수면을 담당하는 기능이 떨어졌고 그래서 안경을 쓰는 것처럼 보조를 해 주어야 합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을 우리는 의존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안경은 몸 바깥에 쓰고 있는 것이고 약은 먹어서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니, 그래도 조금의 찜찜함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비유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고혈압, 당뇨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오랜 기간 약을 복용하게 됩니다. 우리 몸에서 혈압, 혈당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기능을 잃어버렸고, 때문에 약물을 통해서 이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주요 질환들은 안타깝게도,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적인 질환들입니다. 대표적으로 공황 장애가 그렇고, 기분 장애와 수면 장애가 많은 경우에 그러하고, 조현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검사에서 이상 수치가 정확하게 나오는 것이 아닌 까닭에 직관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의 많은 부분이 적절한 약물을 통해 치료될 수 있습니다.“
정신과적 질환의 치료를, 신체 다른 부위의 질환에 대한 치료와 동일선상에서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정신과의 질병은 다른 병과 다르다는 오랜 편견이 치료를 어렵게 해 왔습니다. 어렵사리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의존과 중독을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과의 많은 질환들은 고혈압, 당뇨 등 신체 다른 부분의 질병과 같이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하여야만 하는 질환입니다. 자신과 주변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 적절한 약물 치료는 유용한 수단입니다. 정신과 약물 치료는 중독되거나 의존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