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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기린 Jun 25. 2022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다. 병원에도 비슷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옛적에,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어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있었다고 한다. 서너 살 된 아이가 있었지만, 매일같이 늦게 퇴근하는 통에 아이가 깨어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다. 집으로부터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전문의는 고된 일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신경쓰지 못했다. 당연히 별 일 아니리라 생각하고 기본적인 처치만 하도록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이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아서 결국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가와사키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에서야 부랴부랴 도착한 전문의는, 내가 이번 주에만 가와사키병 환아를 몇 명을 보았는데.... 하면서 허탈해했다고 한다.


밤늦은 시간에 병원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병원 의사가 격무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것이 내 이야기가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하지불안증후군이라는 수면 질환을 가지고 계신다. 밤에 누우면 다리가 간질거리면서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잠들지 못하거나 잠에서 깨게 되는 증상의 질환이다. 다리를 주무르거나 움직여야 증상이 완화되어 다시 잠을 청해볼 수 있게 된다. 어디가 아프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같이 잠들고 또 잠을 유지하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니, 삶의 질을 몹시도 떨어뜨리는 질환이다.


아버지께서 밤에 잠을 잘 주무시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는 몇 년 되었다. 한참 병원에서 바쁘게 일하던 때이다 보니, 그저 잠귀가 밝은 분이셔서 그렇겠거니 하고 말았다. 더 이야기하지 않으시길래 별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여쭈어보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에야 수면 문제로 병원에 다니고 계시고 증상이 오랫동안 잘 조절되지 않아서 밤마다 스트레스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내가 그 무렵에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를 몇 명을 보았는데....


몹시 웃긴 어떤 개그맨이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 앞에서는 그렇게도 무미건조한 사람일 수가 없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들으며 크게 공감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정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추어 말하는 법을 배웠지만 능력이 발휘되는 것은 가운을 입었을 때뿐이다. 진료가 끝나고 가운을 옷걸이에 거는 순간부터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정신의학을 전공했으니 사람들과 좀 더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어 좋겠다, 나의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서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돌리곤 한다. 옛 어른들 말씀치고 틀린 것이 없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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