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박도하 작가의 '기연'

우리의 기연(奇緣)이 남기고 간 것은

by 유키
책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기연과 치수의 첫 만남을 읽을 때는 후텁지근하고도 푸릇푸릇한 여름 냄새가 났고, 뒤로 갈수록 여름은 저물었으며 초가을을 맞이하는 듯 조금 쌀쌀하고도 건조했다. 섬세한 묘사가 마음에 들었고, 그들의 세상에 잠시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혼, 그리고 가족. 그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사람의 인생을 뒤흔드는가. ‘기연’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여야 하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사실은 그 누구보다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역시 서로 다른 뿌리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몇 십 년씩이나 한 공간에 공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가, 싶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기연과 치수의 표면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둘을 중심으로 한 전체적인 인물들의 서사와 감정에 집중했다. 그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과연 기연과 치수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가. 찰나의 구원자였는가, 아니면 또 다른 죄책감이었는가, 그것도 아니면 거울이었는가. 어쩌면 두 사람도 쉬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기연과 치수의 관계뿐 아니라 주변 인물인 미옥, 예리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내어 읽는 이로 하여금 ‘기연’이라는 소설 속의 작은 세계를 더욱 다채롭게 볼 수 있도록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기연과 치수 다음으로 주목했던 인물은 미옥이다. 미옥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녀의 이야기를 참을 수 없이 궁금해했을 것이다. 평생을 상처와 증오의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하는 삶이라니, 얼마나 잔인한가. 그 대상이 가족이라면 고통은 배가 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에 짓눌려 받아낸 그 눈빛, 말들이 상상할 수 도 없을 만큼 큰 비수가 되어 미옥의 가슴에 깊이 박혀버린 것이 느껴졌다. 이유가 있다면 어떻게 해결이라도 해보려고 노력하면 될 텐데, 이유 없는 미움이었으니 미옥이 뭘 할 수 있었겠는가.
하여 미옥이 택한 방법은 집을 떠나 절에 가는 것이었다. 도피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이 미옥에게는 마지막 지푸라기이자 유일한 안식처였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람에게 한없이 상처받았지만, 결국 또 다른 사람으로 그 상처를 치유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아직까지 위태롭게나마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가족을 끔찍이 아끼기도, 끔찍하게 미워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라면 그 미움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와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미움’은 삶에 끝없는 무력감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누군가가 미울수록 보란 듯이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며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언젠가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이 묵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왜 인간은 서로 상처를 주는 것일까. 누구 하나 미워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인가? ‘좋게 좋게’ 살아간다는 말은 결국 이상일뿐일까? 조금은 허무했다.


‘기연’ 속 인물들의 공통점은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치수는 어머니와 미옥의 관계에 대해 알면서도 침묵했고, 미옥은 치수와의 관계에 대해 체념하고 침묵한다. 자신도 침묵하고 있으면서, 상대가 침묵하는 것에 대해 답답해한다. 그리고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간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지쳐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환갑을 바라보고 있고, 자신의 인생과 나이에 대해 조금은 체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를, 새로운 시작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작게라도 노력한다. 나는 이들을 미워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인생사는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삶의 과정을 버티고 살아낸 것은 다른 이들이 아닌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기연’을 읽는 내내 그저 이들을 숨죽여 지켜보는 편을 택했다.
‘기연’을 몇 번이나 읽었다. 기연의 감정을 더 깊이 느껴보고 싶었고, 치수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보고 싶었다. 잠시나마 그들이 되어보고자 했다. 사실 내가 책장을 다시 펼쳤던 이유는 치수 때문이었다.
화재로 이불가게를 잃으면서 치수는 그 자신마저 잃어버렸다. 이불가게 운영은 곧 치수가 ‘사는 방법’이었으리라. 가면을 쓰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몇십 년이 다 되어가면서 이불가게 주인으로서의 치수는 그에게 또 다른 자아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본래 자아보다 자신을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자아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불가게가 화재로 한순간에 사라졌다. 치수의 20년이 무너졌다. 부정당했다. 하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좌절감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앞에 설 자신조차 없는 상태로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치수의 본래 자아를 형편없이 느껴지게 했는가. 교포 아버지의 두 집 살림과 무관심이 시작이었을까. 치수의 이야기를 알아가면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되어 살아가는 데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치수는 자신이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주는 방법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비겁하고 무책임한 변명으로 여겨질 수 있다. 내 생각도 그랬다. 사랑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저 ‘몰랐다’라는 한마디로 끝내기에는 그 자식들은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악순환의 연결고리로 느껴질 뿐이다. 그렇게 미옥, 그리고 치수의 아들들에게 이입했을 때는 치수가 원망스러웠지만, 치수의 어린 시절을 알았을 때는 그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혼란스러웠다. 누구나 사연은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그가 한 행동들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내가 완벽히 공감하고 이해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족 내에서의 얽히고설킨 감정,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가족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왜 떨어져 살지 않고 계속 함께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통받는다면 미련 없이 끊어내면 되는데, 그러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텐데 대체 왜 그것을 놓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기연’을 읽고 나자 가족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가정을 지킨다’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연 진정으로 ‘지켜진 가족’이란 무엇일까.
‘기연’은 소설이지만 결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세계다. 어쩌면 아주 많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나이 듦과 묵은 상처들, 돌이킬 수 없이 엉켜버린 관계, 그리고 사랑을 향한 갈망. 이런 것들은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며 이미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은 모두에게 묻고 싶다. 어떤 방식으로든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그로 인해 고통받고 지치며 살아가는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답이 있기는 할까. 아니면 이것 또한 그저 인간의 숙명일까.
기연의 깊은 수면을, 미옥의 해방과 평안을, 치수의 안정과 변화를 빌어본다. 꺼져가는 듯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작게나마 끈질기게 타오르고 있는 그들의 불씨를, 가슴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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