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서 해결된 게 있었나? 눈물이 궁금해졌다

눈물은 마음의 악기

by 단짠
울보에겐 이유가 있다

“어떨 때 울었지? 울어서 해결된 게 있었나?”

두 개의 질문으로부터 이 글은 시작한다. 눈물과 나의 관계가 궁금해진 이유는 내가 울보이기 때문이다.

불리하면 울고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울고 틈만 나면 울어서 부모님은 나를 울보 공주라 불렀다.

파란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채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자 울고 있는 다섯 살 때 사진이 '울보 증거자료'로 남아있다. 요즘으로 치면 부모님이 '울보 인증사진'을 찍으신 거다.

부모님은 내가 울거나 말을 안 들을 때마다 '오죽하면 울고 있는 모습을 찍었겠니.'라고 말씀하시며 구원투수로 울보 인증사진을 등판시키곤 했다. 과연 부모님의 작전은 성공했을까?

난 쉽게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울면 문제가 해결되거나 적어도 부모님이 달래주시는 데, 아무런 이득 없이 눈물을 멈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를 먹어가며 나이와 눈물 작전의 승률은 반비례하게 됐지만, 눈물 작전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나에게 눈물은 감정표현과 의사전달을 위해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눈물로부터 독립하다

지금도 울까?

몇 년 전까진 여전히 울보였다. 차이점은 어렸을 때는 울면 응석을 받아주는 부모님이 계셨는데, 어른이 된 후는 응석을 받아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믿을 구석이 사라진 현실의 변화 속도를 감정 표현 수단이 따라가질 못해서 한동안 여전히 울보로 지냈지만,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른이란 시간표만으론 아이를 어른으로 변화시킬 순 없었다.

현실이 삶을 변하게 한 건, 현실이 고통이란 포장지에 싸인 채 등장했을 때부터였다. 누구나처럼 내게도 인생 마이너스 곡선이 바닥을 친 최악의 날이 있었는데, 모든 걸 잃어버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절망과 눈물뿐이었다. 그날의 눈물은 구조신청이었다.

얼마 동안이었을까. 울기 신기록을 기네스북에 올릴 듯이 소리란 소리를 다 지르며 울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달래주거나 해결책을 찾아 줄 사람이 없었다. 날 위해 기도해 줄 엄마도, 내 말을 들어줄 절친도 곁에 없었다.

그 순간, 울음을 멈췄다. 아무도 듣지 않고 그래서 아무도 구조하러 달려올 수 없다면, 울 필요도 없었다. 누울 자리 보고 뻗는다고 했는데, 나는 누울 자리가 없었다.


고통으로 포장된 채 배달된 현실은 차가 왔지만, 오히려 머리가 맑아진 것 같았다. 아무도 없음을 인정한 날이 성장점이 된 걸까? 기댈 곳이 없어지면서 내가 잘 못 알고 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물과 관계 정산할 때가 됐다는 비상벨이 울리고 있었다.

그날부터 진짜 자립이 시작됐다.

진짜 자립이란 경제적으로 자신을 먹여 살리는 것과 더불어 감정적으로도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건강한 상태라는 걸 깨닫고서야 비로소 내가 내 감정을 돌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독립한 것이다.

결핍은 변곡점을 위한 전주가 되기도 한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땐, 사람 너머의 존재를 찾게 되고. 아무 희망도 없을 땐, 보이는 것 너머를 보게 된다.


눈물은 마음의 악기

울어서 해결된 게 있냐고?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다. 그러나 여전히 잘 운다.

달라진 건 눈물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게 된 것이다. 감정 하소연이 아닌 감정을 알아가는 눈물이 됐다.

정화를 위한 눈물이란 슬프기보단 다정다감하다. 그래서 눈물은 내 마음을 내게 들려주는 ‘마음의 악기’다.


감정의 독립이 마음을 자라게 했나 보다. 내 마음에 귀 기울이게 된 것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귀 기울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눈물은 긴 의자에 혼자 앉아 옆자리에 앉아줄 사람을 찾는 외침일지도 모르니까.

‘내 마음 좀 알아줘.’

‘나와 마음을 나눠 줘.’

만약 누군가 혼자 울고 있다면, 옆자리에 살포시 앉아 어깨를 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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