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린 아버지의 마지막 한 마디

부모의 말은 기도다. 기도는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다

by 단짠

Q.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삶의 원동력은 뭐였을까?

모든 것을 뺏어가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가정, 돈, 사랑, 자존감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가 됐었다.

폐허가 된 인생이 민낯을 드러냈을 때의 심정은 다시 겪을 수 없는 고통이다.

감히 그렇게 말해도 될 만큼 힘들었다.


폐허가 되는 과정은 아주 서서히 진행됐다.

위기감은 있었지만,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하며 문제를 묵인한 채 하루하루 지나갔고,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면 오히려 매듭이 더 꼬여버렸다.

잘하려 해도 엉망이 되어가는 혼돈 속에서 매일 공포 영화를 찍는 것 같았다.


아주 작은 틈으로 들어온 곰팡이가 나와 내 집을 썩게 만들고 있었다.

결국, 폐허에 주저앉고서야

‘모두 어디로 갔지?’

빈 터를 두리번거려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불행이 곁에 있는 걸 눈치챘지만, 그 불행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줄은 몰랐다.




그 시간을 어떻게 건너왔을까?

원인은 여러 가지인데 결과는 참담함이란 단어 하나로 정리됐던, 그때가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다.

1,000원이 아쉬워서 난방도 할 수 없는 형편으로 빚 갚는 삶이 돼버린 무명의 시간을 나는 어떻게 지나왔을까?


폐허가 되는 과정이 느렸던 만큼 터를 다시 세우는 일도 서서히 진행됐다.

영화처럼 완벽한 로맨티시스트 사장이나, 뜬금없는 은인의 등장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을 낯설어하며 하루하루 헤쳐나가고 있는 내가 유일한 등장인물이자 주인공이었다.

환상도 없이 펼쳐지는 재미없는 영화가 내 인생이었다.


아무도 없을 땐 사람 너머의 존재를 찾게 되고,

아무것도 없을 땐 보이지 않는 희망을 비로소 붙잡게 되나 보다.

곁에 사람이 없어서 사람 너머 신의 손을 잡았고, 소유와 경력이 사라져서 생활력을 움켜쥐었다.

지금 돌이켜 봐도 그때 했던 두 가지 선택은 기특할 만큼 잘한 일이다.


과연 내가 잘한 걸까?

사실, 희망과 생활력을 선택 한 건 내가 아니다.

내가 살아온 날 모은 황금 구슬이 마음속 어딘가에 저장돼있다가 인생의 극적인 순간에 마법처럼 펼쳐진 것이다. 마치 무협 영화에서 주인공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했을 때, 스승이 '가장 위험한 순간에 이 병을 열어보게!'하며 건넨 호리병을 열면, 위기를 벗어날 무언가가 나타나서 주인공을 구해주듯이 말이다.


현실에서도 스승이 건넨 호리병과 같은 황금 구슬이 누구에게나 하나씩은 있다.

좋은 사람이 있어서, 운이 좋아서, 정신력이 강해서 등 여러 가지 무늬의 구슬 중 당신만의 황금 구슬을 찾아야 한다.

나의 황금 구슬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해주신 말이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너를 낳은 거야. 너를 통해 아버지가 됐고, 아이가 자라서 학교 가는 기쁨도, 딸이 엄마가 되어 손자를 안겨주는 감동도 모두 너를 통해 처음 경험했단다. 네가 있어 가능했던 축복이야.”

결정적인 순간에 살아갈 이유가 되어 준 건 다름 아닌 아버지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내게 아버지는 감사한 마음만큼 원망하는 마음도 커서 마주 보기가 어려운 분이었고, 아버지의 긴 투병 생활은 정신적, 경제적으로 나에게서 많은 것을 뺏어갔지만,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다는 걸 느끼며 자라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아버지셨다.

내 안에 사랑 씨앗을 심어주신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

아버지의 마지막 한 마디는 결정적인 순간에 살아갈 이유가 되었고, 지금도 내 안에 황금꽃으로 활짝 피어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딸을 위해 평생 해 온 기도였다.

아버지,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이 될게요.

기도를 마치면 하늘에서 만나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들리는 것

부단히 들려오는
이 섬세한 소리를
들어보라
이것이 바로 침묵이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을 때
비로소 들리는 것에
귀를 기울여 보라.

-폴 발레리-



사진 © bingngu93,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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