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스러워도 갖춰야 하는 것
현실이 주는 통증을 못 느끼게 하려는 마취제가 아닐까?'- 희망에 관해 삐딱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라는 희망을 향한 무한 신뢰가 오히려 고문이 된 상황. 이런 암담한 상황이 반복될 땐, 삐딱함은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희망 고문이란 말이 등장할 정도라면, 희망의 실체는 가치보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사기 캐릭터 인지도 모른다. 희망이 사치스러운 고문이라면, 차라리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나 버릴 걸 버려야지 함부로 분리수거했다간, 보물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가치 있는 것도 있으니까!
상황이 기준이 되면 무거우면 버리고, 아쉬우면 아무거나 채우게 된다. 한 번뿐인 인생을 아쉬울 때마다 아무거나 채워 넣으면 이도 저도 아닌 삶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인생은 상황이 기준이 아닌 가치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유명 연예인의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생각한 대로 산다'는 말처럼 가치가 기준이 돼야 인생을 '나답게'살 수 있으니까.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갈 뿐인 현실에서 희망을 품고 산다는 건 사치스러운 말이지만, 사치스러운 것 중에도 꼭 갖춰야 하는 가치를 지닌 것이 있고, 그게 바로 '희망'이다.
그래서 나는 버릴 수 없는 절대적인 것들의 목록을 만들기로 했다.
버릴 것 vs 지킬 것
버릴 수 없는 절대적인 것들의 목록, 즉 나의 가치 리스트를 만들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꺼냈다. 물질적 자산뿐만 아니라 장점, 단점 같은 내적 자산도 포함해서 적었다. 옥석을 가리기 위해 돌멩이가 필요하듯, 중요하고 안 하고를 판단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기록한 목록은 두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하나는 '생활 밀착형' 다른 하나는 '꿈 밀착형'이다. 각 카테고리에는 구체적인 목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생활 밀착형 리스트에는 직업, 건강, 재산, 모임 등이 있고 꿈 밀착형에는 사랑, 신앙, 문화, 여행, 친구 등이 있다. 각 목록 밑에도 두세 개의 세부 목록이 있는데, 목록과 다른 점은 세부 목록은 동사와 형용사로 표현돼 있다. '읽고 쓰고 걷는 하루', '질문 잘하는 소통 왕'. ‘돈 쓰지 마.’ 이렇게 말이다.
다음 순서는 두 카테고리에 속한 크고 작은 돌멩이를 다른 기준으로 한 번 더 분류하기였다.
버릴 것 vs 지킬 것, 줄일 것 vs 늘릴 것, 투자할 것 vs 현상 유지할 것, 애써서 해야 할 것 vs 즐기면 되는 것, 등으로 세분화시켜서 다시 목록을 정리했다. 어느 부분에 더 목록이 많은가? 가장 많은 목록이 있는 분야가 내가 가장 원하는 방향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치이자 고문이 된다 해도 분리수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이다.
딱 5분 동안 쓴 후, 공책에 쓴 목록을 한 줄 세워 놓으니 신기할 만큼 분명하게 옥석이 구별됐다. 자, 이제 분류가 끝났으니 옥은 보석함에 넣고, 돌은 분리수거함에 망설임 없이 던져 버리면 된다. 그다음엔 새로 속아진 목록들을 각각의 마음 서랍에 차곡히 정리하는 것으로 분류작업은 마무리가 됐다. 새로운 가치 리스트가 생긴 것이다. 가치 리스트가 구조 조정되면서, 비로소 인생 방향과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도 분명해졌다.
기준이 달라지면 생기는 일
인생 품목의 크기나 무게가 달라진 것도 아닌데, 인생이 한결 살아 볼 만하게 여겨진다. 왜냐고? 나의 가치 리스트를 적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삶의 속살이 세상이 막아 놓은 벽을 뚫고 깜짝 등장했기 때문이다. 짙은 화장을 지우고 실제 얼굴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가치 중의 가치, 희망을 기준으로 세우니, '내가 가능하겠어? 내 형편에..'라며 망설였던 것들이 '가능성'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세상으로 나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내 삶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희망이란 깃발을 달고 내 삶의 기준을 '단짠 작가'라고 부르기로 했다. 또 내 삶의 방향성은 '달콤하고 짠한 인생을 나누는 온기'라고 이름 지었다.
대단해지겠다? 여전히 그건 아니다. 다만 의미 있는 삶이 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가 아닌, 나를 위해서!
"내가 지금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
" 내가 그럴 능력이 있을까?"
따위의 가능성에 벽 세우기는 그만하겠다. 기준이 생겼다는 건 다르게 살기로 한 거니까! '생각한 대로 살기'는 권리이고 의무였다. 나를 한 평 공간에 가두고 인생 평수 줄이기를 한다는 건 비겁한 변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가치'를 바르게 세워가는 기준과 방향성을 찾고 이름 지었더니, '단짠'이란 나의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설정됐다.
새로 이사 갈 집엔 문패를 달아야겠다. '단짠 작가 박아민'이라고 문패 걸 상상을 하니 이미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런 게 희망이라면? 난 제대로 희망과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이제 희망은 누명을 벗었다. 나에게 희망은 더는 막연한 고문도 사치스러운 것도 아니다.
'달콤하고 짠한 인생을 나누는 온기'는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질까? 기대된다. 기준이 달라지면 생기는 일?- 그 일들은 앞으로 요모조모로 펼쳐질 거다. 설렌다. 콩닥콩닥 콩닥콩닥 내 삶이 건강하게 살아 있다.
인생 가방에 뭘 넣고 다녀?
가방의 무게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여행'을 방해하는 건 아냐?
있잖아, 지금부터 난 '가치 있는 것'만 인생 가방에 담으려고 해.
'나다운 가치'를 담은 인생 가방을 메고,
가고 싶은 길을 또박또박 걸어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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