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 인생, 한 번뿐인 백 년 어떻게 살면 만족할까?

공포 동화 말고 그냥 동화로 살기

by 단짠

Q. ‘백 년을 살아보니’ 다음에 어떤 문장이 이어질까?

안녕하세요, 백 살입니다. 당신은 몇 살을 더하면 백 살 되나요? 오십 년, 칠십 년 혹 십 년 후 백 살이 될 때까지 어떻게 살고 싶어요?

백 년

짐작도 안 되고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시간까지 고민하고 싶진 않지만, 김 형석 교수의 〈백 년을 살아보니〉란 책 제목을 본 후 '어쩌다 백 살이 됐어.'가 아닌 ‘머릿속에 그려 온 백 살을 살아서 좋아.’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백 년이란 숫자가 나에게 삶의 유한함과 정면으로 마주 보게 등 떠민 셈이다. 책 제목이 내게 “인생이 천년만년 계속될 줄 알았어? 너 지금 인생 시간표 몇 교시인지 알기나 해?”라고 따지듯 질문했으니 어떻게든 답을 해야 한다. 인생이 내게 던지는 질문을 외면하면 돌고 돌아 다시 그 질문을 만날 때까지 인생이 공회전한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경험들의 공통점은 뼈저린 후회라서, 인생이 질문하면 반드시 답하려 애쓴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인생이 바라는 건 정답이 아닌, 질문을 진심으로 탐색하길 바란다는 걸 알게 됐다. 왜냐하면,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의 가치를 찾는 질문이니까. 그래서 나는 백 년 이란 숫자가 걸어온 질문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백 년을 살아보니’ 다음에 어떤 문장이 이어질까? 어떻게 살면 만족스러울까?

어떻게 살면 만족할까?

백 살이 되는 것과 90대를 사는 건 어떤 삶일까? 지금까지 거쳐 온 어느 세대도 짐작한 대로 살지 못했다. 더구나 90대는 짐작도 안 된다. 그래도 짐작해 보려 한다. 명사의 책을 읽기 전에 나의 문장을 만들어야 하니까. 누구의 생각을 따라 하고 싶지 않다. 내 생각을 정리한 후 명사의 지혜를 조언 삼아야 한다. 나답게 살 나이가 됐는데도 여전히 가이드의 깃발을 보며 따라다니는 패키지 관광처럼 인생을 사는 건 안전하지만 지루할 테니까. 그래서 백 년을 산다는 것의 의미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에 집중하기로 했다. 의미가 앞서면 진짜 마음이 숨어버리곤 해서 순서를 잘 따져야 하는데,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충실하면 의미도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장을 잘 담그면 발효되면서 유익균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 살고 싶은 삶을 나에게 물었다. 가족의 행복이라고 말할까 우물쭈물하다가, 꿈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삶은 세상 기준이 좌지우지했다. 꿈보다 경제활동과 가정생활에 적합한 사람이 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무엇보다 ‘뭘 해서 먹고살려고? 넌, 할 수 없어.’에 붙들려있었다. 그건 내가 자발적으로 붙들린 게 아니다. 유년의 기억으로 들어가면 반복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공포 동화에서 그냥 동화로


“넌 도깨비 같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 날 딴짓이니?”

참 이상하다. 엄마는 내가 공부할 때는 안 들어오고, 공부하다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방문을 불쑥 열고 들어온다. 왜,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건 다 쓸데없는 딴짓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땅따먹기, 개미굴 조사하기, 그림 그리기, 캔디 만화 수집하기까지 엄마는 내가 좋아서 하는 모든 행동을 싫어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다. 엄마는 내가 뭘 먹고살지 걱정된다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너무 충격적이라서 잊을 수가 없다. ‘너 커서 뭐해 먹고살래? 사는 게 쉬운 줄 알아?’로 시작하는 엄마의 교훈은 교육방송처럼 들렸다. 장르는 공포 동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캔디 만화와 그리스 신화를 읽을 때마다 엄마는 공포 교육동화를 교훈으로 들려주셨다. 주 대사는 역시나 ‘뭘 해서 먹고살래!’였다. 그래서 난 ‘무엇을 해야 먹고살지’에 초점을 맞추고 대학에 진학했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했다. ‘이건 아니야, 네가 좋아하는 건 이런 삶이 아니야.’라고 속에서 외치곤 했지만, 공포 동화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속과 다른 겉모습으로 지구 반 바퀴를 돌만큼 살았다. 공허가 이름표처럼 따라붙은 채로.

엄마 교훈대로 먹고사는 일에 진심이었다. 만약, 엄마가 '넌, 무엇을 할 때 즐거워?', ‘넌, 커서 어떻게 살고 싶어?’라고 물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에 진심으로 살까? 적어도 공허라는 이름표를 달지는 않았겠지.

엄마는 실패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실패와 후회는 엄마가 가르쳐 주지 않은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질문은 반복해서 돌아온다는 걸 알려 줬고 그 후 나는 내 목소리로 답하는 연습을 해왔다. 누구나 질문을 받지만, 누구나 답을 찾는 건 아니다. 인생이 내게 한 질문에 다른 사람 생각대로 답하면 공허가 자라서 삶을 공터로 만든다는 걸 깨닫고부터 공포 동화에서 탈출할 용기가 생겼으니 난 운이 좋다.

다시 오늘 질문으로 돌아가면, ‘백 살을 살아 보니’ 다음에 쓸 인생 이름표에 ‘먹고사는데 열심이었다.’ 외에 하나를 더 쓰고 싶다. 그것은 바로, 공포 동화에 뺏긴 동화를 다시 찾기!

이제는 세상 기준에서 할 수 있고 없고, 내 능력으로 할 수 있고 없고 가 아닌, 그냥 하고 싶은 일 하나는 오롯이 즐기며 하고 싶다. 무명과 유명에 휘둘리지 않고 꿈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 인생 질문에 답하는 내 목소리가 당당하다. ‘엄마,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게요. 걱정 말아요. 저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요.’

무엇이 될까 보다 어떻게 살까

오늘 만난 인생 질문의 답이 윤곽을 드러냈다. '무엇이 될까'보다 '어떻게 살까'에 집중했더니 꿈이 인생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러니 백 살이 될 때까지 남은 삶을 ‘꿈 탐험’이라 설정하고 그 기간을 ‘자유 여행 기간’으로 살아야겠다. 그리고 말하리라. ‘백 년을 살아보니 꿈같아. 날마다 꿈을 수놓았어.’라고. 나의 꿈이 뭐냐고? 쉿! 그건 나와 인생만이 나눌 수 있는 비밀이다.

이제 ‘백 년을 살다 보니’의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다. 유한함이 주는 소중함이 미리 답을 찾게 했지만, 난 오늘 완성한 문장이 내 삶을 관통하리란 걸 믿는다.

"백 년을 살다 보니 가장 소중한 하나면 충분했다." 근심으로 사는 건 억울해서 백 년 살면서 천년 근심으로 사는 건 억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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