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출구 없는 립스틱

앞으로 옆으로 다시 뒤로 그러다 오른쪽으로 돌아

by 단짠

- 세 번째 출구로 나와야 합니다. -

분명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는데, 세 번째 출구는 찾을 수가 없다. 이곳은 두 군데의 출구만 있을 뿐이다. 도대체 세 번째 출구가 어디 있다는 거야? 지하도를 아무리 둘러봐도 세 번째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두 군데 출구엔 번호조차 없다. 어디가 첫 번째야? 번호도 없이 나보고 어떻게 세 번째를 찾으라는 거지? 분명한 건 지하도 안은 내가 들어온 출입구와 맞은편에 있는 또 다른 출입구 그리고 하나의 홀만 있다는 것뿐. 세 번째 출구의 흔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홀은 넓다기보다 광활했다. 내가 선 위치에서 전체 공간이 보이지만 낮고 높은 다양한 높낮이의 벽이 세워져 있어서 조각난 미로 같다. 벽 색깔도 저마다 달라서 어수선하다. 빛바랜 광고 포스터가 빗물에 젖은 채 흉물스럽게 붙어있는 장마철 거리 같았다. 앞으로 발을 내디뎌도 앞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옆으로 그리고 다시 뒤로 그러다 오른쪽으로 돌아와 다른 벽을 둘러 가며 맞은편으로 걸어가야 했다.


드디어 맞은편 출구에 도착했지만, 역시나 번호도 없고 다른 출구는 흔적조차 없다. 벽을 두드려 볼까? 영화에서처럼 벽안에 문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주먹을 쥐고 벽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두드릴 수 없다. 그녀는 마음대로 두드릴 수도 두리번거릴 수도 없다.


- 아무도 눈치채게 해선 안 됩니다. -

탁하고 갈라지는 목소리가 두 번이나 반복해서 다른 사람 눈에 띄게 행동하지 말라며, 조심 또 조심하라고 강조했었다. 제길, 어쩌라는 거야. 어느새 지하도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지났다. 이대로라면 나는 미션을 통과할 수 없다. 내 자리가 사라지는 거다. 애초에 있지도 않았을지 모를 내 자리가.

엉터리다. 그 목소리가 한 말은 다 엉터리다. 아무도 모르게 세 번째 출구로 올라오라고 했지만 세 번째 출구는 보이지 않으니 있지도 않은 거고, 웃긴 건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내가 큰소리를 치며 바닥을 구른다 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하지만 난 여기를 벗어날 수가 없다. 반드시 출구를 찾아야 나갈 수 있으니까. 들어온 출입구는 입구였으니 더는 출입구가 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답은 세 번째 출구라고 정해져 있는데, 첫 번째나 두 번째 출구로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기거나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으니 끝까지 그 목소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화장실은 어디일까? 여기 누구라도 나타난다면, 그 사람을 따라가면 될 텐데.


그래, 다시 찾아보자. 세 번째 출구.

세 번째 출구가 나타나면 바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마감 시간에 늦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거울을 꺼내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추렸다. 준비된 자세를 보여주고 싶다. 게다가 출구가 입구가 되면 그곳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첫인상부터 지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친다. 언제나 그랬듯 마무리는 립스틱 바르기로 끝냈다. 빨간 립스틱. 나를 확신에 찬 전문직 여성으로 보이게 할 뚜렷한 색이 마음에 들어서 중요한 날은 언제나 빨간 립스틱을 바른다. 출구만 찾으면! 나는 이 빨간 립스틱과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힘을 내자. 난 할 수 있다. 이젠 그게 뭔지도 모르지만.

자, 이제 다시 찾아보자.

자, 다시

다시

한 번 더


눈물과 땀이 흘러내려 그녀의 입술마저 빨간 물감이 번져 흘러내렸다. 빠알간... 진액이.


* 취업ㆍ진학으로 힘들어하는 청춘 -그들에게 어른이 제공한 사회는 거짓투성이인 것 같아요. 그런 답답함과 청춘들의 당혹감을 은유적으로 묘사했어요~ 부족하지만 요모조모로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제목에 사용한 사진 © Pexels, 출처 Pixaba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