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뿔을 찾아서
Q. 어른들 때문에 포기한 꿈이 있나요?
"너는 딱 하는 짓이 도깨비 같아." 유년기에 자주 듣던 말이다. 그 말을 내게 한 사람은 나의 최측근 중의 측근인 엄마다. 물론 측근이라고 해서 우호적이기만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도깨비는 너무 타격이 큰 표현이었다. 엄마가 싫어하는 것들이 뭉친 존재를 대변하는 가상의 존재가 도깨비였으니까. 그래서 사는 내내 그 말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왜 엄마는 나를 도깨비 같다고 했을까? 엄마에게 나는 엄마가 원하는 딸이 아닌, 안 했으면 하는 짓만 골라하는 별스러운 아이였다. 그래서 별나다는 욕을 삼킨 채 도깨비라고 불렀을 것이다. 엄마가 도깨비라고 부를 때마다, `그래서 난 너랑 살 수 없어!`라는 무언의 공포가 나를 조여왔다. 그렇게 나의 유년기는 엄마 마음에 들지 않는 내가 엄마를 잃을까 봐 불안해하는 나날이었다.
엄마가 바라는 딸은 외모도 행동도 다소곳하고 공부도 잘하는 흔한 말로 양갓집 규수 같은 딸인데, 나는 그런 딸과는 반대로 동네를 돌아다니며 뛰어 놀기를 좋아했고, 호기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 들려주길 좋아했다.
현실보다 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게 지나쳐서 거짓말도 위험한 장난도 곧잘 했다. 예를 들면 메리 포핀스 영화를 보고 옥상으로 올라가 우산을 쓰고 뛰어내리려 발을 뻗는 순간 엄마가 비명을 질러서 멈췄고, 네모난 물고기를 봤다고 우기기도 했고, 어린이만 천국 갈 수 있다고 해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 '마당에 있는 자갈을 먹고 죽자! 그래야 천국가'라고 부추기기도 해서 여러 차례 엄마를 놀라게 했다. 별스러운 개구쟁이였다.
삐삐라는 드라마와 빨강 머리 앤 만화 볼 때마다, 나도 저런 반짝임이 있는데, 왜 엄마는 나를 도깨비로만 볼까? 화가 났다. 도깨비가 뭐 어때서….
화가 난 채로 청소년기를 보냈고, 화가 난 채로 어른이 됐다. 그래서 늘 화가 난 채로 도깨비라고 불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 애썼다.
그래, 난 별스러운 성격이 있었다. 현실보다 상상 속을 탐험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봐도 무난한 사람이 됐다. 무난하게 된 지금, 단점이었던 별스러움이 참 그립다.
왜냐하면 그 도깨비가 별스러운 상상력이 재료인 소설가가 됐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엄마가 소설가가 된 날 보면 또 도깨비라 부를까? 그러나 난 더는 별스럽지 않다. 아쉽게도.
무난해진 도깨비는 매력이 없다. 그래서 소설가다운 상상력이 너무나 고프다. 엄마, 나 도깨비 되고 싶어.
살아보니 누구나 성격 중에 도깨비도, 삐삐도, 빨강 머리 앤도 그리고 위인다운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한 사람안에 있는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면서, 다양성 속에 감춘 보석을 발견해야 '나다운 나'로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여러 성향의 조합이지만 그중에 탁월한 무엇이 있고, 그것에 집중할 때 탁월함은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구나 인생을 선물받지만,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나'가 아닌 '기준'에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도깨비로 돌아가고 싶다. 도깨비가 도깨비 다울 때 새로운 창조성이 세상에 등장할테니까.
엄마가 돌아가신 지 30년이 지났다. 내가 두려워했던 대로 `나랑 살 수 없어서`세상을 아니, 내 곁은 떠나셨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야 도깨비가 아닌 엄마가 바라던 딸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결국 엄마가 바라는 양갓집 규수 같은 딸은 될 수 없나 보다. 다시 도깨비로 돌아가기 위해 시동을 거니까. 온 우주를 내 앞마당인 듯 뛰어놀고 싶다. 그러나 뿔을 빼앗긴 도깨비라서 뿔부터 찾아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