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사를 17번이나 하면 불행하지 않아요?

아빠의 빗질엔 다 이유가 있었다

by 단짠

아버지의 한숨은 내 밥이 됐다. 나는 그 밥을 먹고 자랐다. 한숨은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지지 않고 땅 아래로 내려앉아 인생의 거름이 됐고, 거름은 아버지의 삶이 됐다. 한숨을 거름 삼았던 아버지의 삶은 딸의 뇌와 심장이 자랄 수 있는 먹이가 됐다. 쌀밥 덕분에 무럭무럭 자란 줄 알았는데, 나는 아버지의 한숨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아버지의 한숨은 내 밥이다.


이사하면 떠오르는 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사 장면보다 아버지의 한숨부터 시작한다. 이사는 돈 없는 사람들의 불행한 이벤트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가는 멋진 이벤트가 아닌, 삶이 얼마나 녹록지 않은지를 확인하는 이벤트 말이다. 주인집이 전셋돈을 올리면, 엄마와 아빠의 싸움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한숨인지 담배 연기인지 모를 연기를 검은 달을 향해 뱉었다. 나에게 이사는 한숨, 빚 그리고 불화의 씨앗으로 기억된다. 

많은 이사가 불화의 씨앗이 됐지만, 이사할 때마다 불행했던 건 아니다. 들숨 날숨이 있듯 불행한 이사가 있으면 행복한 이사도 있고, 행복한 이사는 좋은 추억을 선물했다. 그 추억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이사할 때 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날은 우리 가족이 행복한 이사를 하고 있었다. 혜화초등학교 언덕 아래 빼곡히 자리 잡은 한옥에 세 살다가 강남에 있는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원더풀데이였다. 그날도 아버지는 우리 짐이 다 빠진 후 빈집을 청소했는데, 여느 때와 달리 노래를 부르며 청소했다. 처음이다. 아버지가 노래 부르는 걸 들은 건.

아버지는 '오동잎 한 잎 두 입'하고 노래 부르며 리듬 따라 빗자루질을 했다. 아버지는 처음 내 집이 생긴 기쁨을 애잔한 가사에 실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오동잎 한 잎 두 입 떨어지는'하고 노래를 부르며 빗자루로 마당을 쓸었다. 마당을 지나 현관 앞을 쓸기 시작한 바로 그때, 현관을 빠져나가던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크게 소리쳤다.

"짐 다 빼면 청소하는 거 아니야! 복 달아나."

말이 아니라 호통에 가까웠다. 마치 화재 경보 사이렌 소리 같았다. 아버지와 나는 갑작스러운 호통에 놀라서 아저씨를 쳐다봤고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만 좌우로 기분 나쁘게 흔들다가 현관문을 빠져나갔다. 아버지는 빗질을 멈췄고 노래도 멈췄다. 아버지와 나는 정지화면처럼 서서 현관만 바라봤다. 시간도 공간도 멈춰버렸고 내가 살던 집인데도 빈집은 스산해졌다. 마치 영화가 갑자기 흑백영화로 바뀌며 공포영화 예고편을 보여 주듯이 말 한마디는 우리를 불안으로 몰았다.

다행히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나를 정지화면에서 풀어줬다. '허, 허' 아버지는 헛기침을 몇 번 더 하시다가 다시 빗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난 더는 빗질을 할 수 없었다. 불길한 말은 어린 마음에 못처럼 박혔다. 나쁜 말은 나쁜 못이 됐다. 섬뜩한 말이 마음에 못으로 박힌 나는 불안에 떨며 아버지를 말렸다.

"아빠, 이사 가기 전에 깨끗하게 치우면 복이 달아난다고 하잖아. 빗질하지 마. 청소하지 마."

아저씨처럼 말이 아닌 호통에 가깝게 소리쳤다.

"뭐?"

어린 딸이 악을 쓰자 아버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몇 초 동안 나를 쳐다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런 말에 속지 마라. 살던 집을 비우고 이사 갈 땐, 이 집으로 이사 올 사람을 생각하고 비워줘야 한단다. 귀찮다고 쓰레기 남기고 그러면 안 돼. 말도 행동도 함부로 하지 마라. 남한테 피해를 주는 행동하면 안 돼. 그러니 너도 좀 전에 들은 말에 속지 마라. 자신만 편하려고 지어낸 근거 없는 속설이야. 가짜에 속지 마라. 사람은 사람 도리를 해야 해. 아민아 명심해.”

라고 말하며 이삿짐이 빠진 집구석 구석에 먼지 한 톨도 안 남기실 듯 살폈지만 나는 여전히 불길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한 말은 그 불길함을 덮을 만큼 강렬하고 따뜻하게 나를 감쌌줬다. 나는 이내 편안해졌고 다시 '오동잎 한 잎 두 잎'하고 노래를 불렀다. '떨어지는 이 밤에~'

세 들어 살던 우리 가족에게 ‘내 집 장만’이라는 인생 역전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처음 생긴 식탁에 모여 짜장면을 먹으며 기쁨을 나눴다. 부모님은 첫 내 집 장만에 들떴고, 11살과 9살 남매는 "엄마, 사람이 개미 같아." 하며 8층 베란다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마치 집이 놀이동산 같고 궁궐 같았다.

이사 후 우리 가족의 삶은 신분 상승이라도 한 듯 삶의 질도 달라졌다. 더는 상을 폈다 접었다 하지 않고 식탁에서 식사했고, 네 식구가 한 방에 자다가 각자의 방에서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세 개의 방에서 따로 자던 우리 가족은 일상도 셋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엄마는 고가구를 수집하느라 바빴고 아버지는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동생과 나 둘만 넓은 거실에서 부모님을 기다리곤 했다. 넷이 상에 원을 그리고 앉아 식사할 때는 냄비를 놓으면 넷 중 누군가는 공깃밥을 들고 먹어야 했다. 그래도 김치찌개 하나만 있어도 맛있었다. 그러나 대리석 식탁은 공깃밥과 국그릇 그리고 돈가스 접시까지 놓여도 여유 있지만, 동생과 나 둘만 하는 식사는 맛이 없었다. 그때 나는 그 맛없는 식사가 우리 가족의 내리막길을 예고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나 모든 균열은 불길한 변화에서 시작됐고 불길한 변화는 불행을 불러왔다.


근거 없는 속설도 효력이 있는지 복 달아난다는 말대로 우리 가족은 불행해졌다. 이사한 지 2년 만에 부모님은 이혼했고 그 집은 부모님이 함께 이사한 마지막 집이 됐다. 그 후로도 아버지의 이사는 10번이나 더 이어졌지만, 엄마와 함께한 이사만큼 좋은 이사는 없었다. 예전엔 돈 때문에 이사가 불행한 이벤트였는데, 돈이 있어도 엄마 없이 하는 이사는 불행했다. 원더풀 데이는 이 년 만에 끝났고, 그 집을 떠나던 날 '복이 달아나!'라는 말이 사이렌처럼 울려서 빗자루를 든 아버지를 원망하듯 봤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짐이 빠진 빈집을 깨끗하게 청소하셨다. 엄마도 떠난 집을.

불길한 말이 현실이 됐는데, 왜 좋은 추억이 될까? 나쁜 말이 못처럼 박혔고, 근거 없는 속설이 실제 일어난 듯 불행해졌지만 사람 도리에 어긋난 말은 가짜라서 미혹할 뿐 실제는 힘이 없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엄마가 떠난 후에도 이어진 아버지의 청소는 불행을 씻어내는 의식처럼 여겨졌고 도리를 지키려 애쓰는 아버지가 내 안의 어둠을 몰아내는 장군 같았다. 아버지의 한결같은 빗자루질은 가짜 속설로부터 나를 지켰고, 아버지의 한숨은 내게 밥이 되어 불행을 이길 힘을 키우게 했다. 불행을 이기는 힘은 자신의 행복보다 우리의 행복을 찾는 태도에서 생기는 걸 아버지의 삶이 가르쳐줬다. 그래서 근거 없는 말이 불안을 조장할 때마다 '선함이 불행을 데려오진 않아!'라고 외치며 조금씩 강해졌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 지어낸 속설에 아버지가 속지 않아서 다행이다.

" 가난하지만, 품위 있게 산 아버지! 그립습니다. 사람 도리 하며 살게요." 그리고 나도 속설을 퍼트려야겠다. "이사 갈 때, 깨끗하게 청소하면 치운 쓰레기만큼 부자가 된대요."라고.


Q. 살아가는 공간을 옮기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닐 거예요. 이사를 할 때 짐을 다 정리하여 텅 빈 집을 봤을 때의 마음. 그리고 새집에서의 시작할 때의 마음은 어떨까요? 이사하면 떠오르는 당신만의 이야기가 있나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