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울해? 그런 건 지지야.
정답을 말할 수는 없지만 들을 수는 있어요. 당신 얘기가 듣고 싶어요.
Good Finder의 시선 2
- 오늘 우울해?
- 그런 건 지지야. 가까이하는 거 아니야.
유난스럽게 마음이 가라앉는 날은 무얼 하세요?
난 도망칠 곳이 있어서 통증이 느껴지면 재빨리 도망쳤어요. 일단, 피할 수 있어서 안심되었죠. 하지만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어요. 통증이 엄습할 때마다 도망을 쳤더니 내 공간이 사라져 갔거든요.
도망친 후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며 내 공간에 다른 것들이 쌓여갔어요. 통증이 그곳까지 따라와 짐을 풀기 시작했으니까요. 오감 중 쓴맛 만을 기억하는 사람처럼 다른 감각을 잃어가고 '우울한'날들이 잦아져서 도망친 곳이 감옥이 돼버렸어요.
'일단 튀어!'
감정에 위험 신호가 감지되면 대피명령을 내리고 매뉴얼대로 행동했어요. 반복은 습관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나쁜 선택이든 좋은 선택이든 반복하면 '내 삶의 행동 매뉴얼'이 되죠. 반복된 선택을 통해 '비상시 행동 매뉴얼'이 형성됐는데 썩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어요. 정말 대피만 될 뿐, 해결을 하는 게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선택했는데 내가 갇혀가는 이상한 '매뉴얼'을 의심하기 시작했죠.
의심이 시작됐으니 매뉴얼에 입력된 도망칠 곳을 파헤쳐야 해요. 나는 어디로 도망을 쳤을까요?
내가 선택한 못난이 삼총사를 소개할게요. 우울, 분노, 두려움과 같은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등장할 때마다 술 취하기, 무한 TV 시청, 일상 팽개치기 속으로 숨어들었어요. 특별할 것 없는 어쩌면 지극히 평범해서 의심할만한 위험 요소가 감지되지 않을 수 있어요.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하고 있는 사소한 일상이니까요. 다만 그것을 일상으로 즐기느냐와 도망칠 수단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완전 다른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죠. 마치, 칼처럼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따라 일상에 유용하기도 하고 악을 끼치기도 하죠. 이렇게 섬뜩한 양면을 가진 존재는 우리 주변엔 많아요.
나의 삼총사가 못난이가 돼버린 건 도망치기 위해 사용되었기 때문이죠. 현실을 피하고 싶을 때마다 반복 소환했어요. 뇌와 심장이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마취를 시작하면 감정도 존재를 감춰서 그 순간은 살 만했거든요.
'아무 생각 없어.' 그러면 '아무 일도 없어.'가 되었어요. 잠시만은.
그런데 문제가 발견됐죠. 감정이 존재를 감출 때, 시간마저도 데려가 버린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유별난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려 선택한 '비상시 행동 매뉴얼' 은 딱, 대피! 거기까지일 뿐, 내 삶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게 하지 못했어요.
도망친 곳이 감옥이 되더니 시간마저 강탈해 가고 온 우주에 나와 쓴맛만 남아서 웅크리고 있었어요. 시공간이 사라진다면 이런 걸까.
그 날 참 섬뜩했어요. 내가 감옥에 나를 가둬 버렸다는 걸 알아챈 순간, 어떻게 공포를 안 느끼겠어요. 한참을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 눈물에 이름을 붙인다면 '후회'가 될까요? 안타까움이 충분한 표현이 될까요?
울만큼 울고 나니, 이 또한 도망치는 행동일 뿐이라 여겨졌어요. 이젠 도망치기보단 '해결'을 선택해야 했고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었어요. 내가 한 선택들이니까요. 그날이 2019년 7월 11일. '탈옥'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 날이에요.
어떻게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갇혀 버린 걸 알아챘느냐고요? 그것도 시공간이 멈춰버린 우주공간을 느끼다니, 말도 안 돼요.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그 느낌은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하다'와 다를 게 없어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니까요. 다만 감정이 빙산이라면 겉으로 보이는 '우울'이란 면이 아무리 커도, 수면 아래서 받치고 있는, 더 많은 면적이 '살고 싶다'라는 생명 에너지를 가졌다는 말 밖엔 할 수가 없어요.
이제는 도망치지 않아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전히 우울에 맞서기보단 도망치려 하지만 '비상시 행동 매뉴얼'을 수정, 보완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유난히 감정이 아우성치는 날이든, 실제 크고 작은 문제가 튀어나오는 날이든, 이젠 '해결'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까를 먼저 찾아요. 내가 나를 가둔 감옥이 우주로 튕겨 나가 시공간을 잃고 옴짝달싹 못하고 떠 있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의 공포가 무엇보다 끔찍하기 때문이죠.
지금 오전 10시 40분입니다.
당신의 시간을 가지고 있나요? 시간을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가지고 있는지,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지 묻고 있어요. 우리는 시간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시간을 사용할 수는 있어요. 그 선택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누리길 응원합니다.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 사이를 오고 가며 시소 타기를 무한 반복하겠지만 좋은 선택이 더 많길 바랍니다.
당신의 '비상 대책 매뉴얼'이 궁금하네요.
정답을 말할 수는 없지만, 들어 들릴 수 있어요. 오늘 우울해요? 그래도 도망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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