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떼마마 Apr 26. 2021

환상방황을 끝내는 슈크림 찾기

내 멋대로 슈크림빵


서른 여덟, 프리랜서로 세상에 던져지고 내 이름으로 살아간지 여섯달이 넘었다. 지식노동을 하면 할 수록 성장하고 알게 되는 기쁨보다 나의 무지가 얼마나 큰지 알게되는 비참함이 더 컸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는 메타인지의 긍정적인 영향 보다는 이렇게까지 기가죽을 수 있구나를 먼저 깨닫게 되는 어른이었다.



내 위에 우뚝 서있는 사람들, 이미 저만치 멀리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난 항상 그들만의 잔치를 구경하는 구경꾼이 되어 이집, 저집 왔다갔다 하다가 내 집 조차 길을 잃고 뱅글뱅글 맴돌았다.


환상방황(環狀彷徨)

환상방황(環狀彷徨)은 안개가 심한 숲이나 들판에서 길을 잃었을 때 같은 장소에서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맴도는 현상이다. 이는 똑바로 걷는다고 하면서도 한 쪽으로 쏠려서 걷기 때문에 발생한다. 마치 양쪽으로 노를 젓는 보트에서 노젓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배가 제자리를 맴도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폭설이 내린 겨울산을 일몰 후까지 운행할 경우 환상방황으로 인한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강설로 시계가 하얀색 일색으로 변할 경우 원근감이 없어져 판단이 흐려지기 대문이다. 특히 방향감각이 흐려짐은 물론, 설면과 공간과의 경계를 식별하기 어렵게 되어 마침내 길을 잃고 환상방황을 하다가 조난에 이르게 된다.  


환상종주를 하고싶어서 시작한 자기탐색 글쓰기는 좋은 방법이었다. 나를 표현하는 한 단어를 구체적으로 내 일에 연결시키기를 원했다. 비록 가정경제가 쑥대밭이 되어서 워킹맘이 되긴했지만 '돈 때문에' 이-강의, 저-강의 전전하기 보다는 ____ 분야는 얘가 찐이야! 하는 걸 만들고 싶었다.


목공을 배울 때 느꼈던 몰입감이 주는 궁극의 행복처럼 나는 나만의 슈크림을 찾기위해 글쓰기가 끝난 직후 서점에 들렀다. 도끼를 들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못질할 자리만 보이듯 어떻게든 나를 찾아보겠다고 집중한 직후라 유독 정체성 찾기에 관한 책들만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그림책을 고르다가 따뜻하고 귀여운 슈크림빵 친구들의 자아찾기 프로젝트라는 글귀에 시선이 갔다.





이 책은 주인공 슈빵들이 자신만의 슈크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진지함 보다는 가벼운 웃음을 주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빵집에서 슈크림이 다 떨어져 속이 빈 슈빵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가 슈크림을 어떻게든 다시 채워서 빵집으로 돌아올 각오를 다진다.


어디로 가야 슈크림을 찾을 수 있을지 알 길 없지만 일단 길을 떠나 겪는 상황에서 5개의 슈빵은 저마다 자신만의 슈크림을 찾는다.




단팥으로 자신을 채우는 슈빵

콩자반으로 자신을 채우는 슈빵

김치만두의 터진 속을 붙여주고 위로해주다가 김칫물이 튀어서 김치슈빵이 된 슈빵

슈크림이 아닌 자신만의 재료로 정체성을 찾은 비밀슈빵

고양이들이 먹는 참치 삼각김밥을 먹었다가 자신의 입맛에 맛지 않아 여전히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 슈빵


각각의 슈빵이 자신만의 슈크림을 찾는 과정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우리에게 깨알같은 교훈을 준다.


1) 단팥슈빵의 교훈

노래부를 시간이 없다니! 그건 너무 지루하잖아.

비록 슈크림은 아니지만 허기진 배로 달콤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것 보다는 단팥이라도 채워서 달달한 노래를 부르는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단팥슈빵은 우리에게 무슨말이 하고 싶은 걸까?


꼭.. 그것이어야만 한다고. 내가 찾는 그것이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유연해지라고, 그것을 찾으러 간다고 몇 년을 불행하기 보다 적정선에서 타협하며 지금 할 수 있는 행복도 충분히 느껴보라고 이야기 해준다.


2) 김치슈빵의 교훈

속이 없는 것도 이렇게 헛헛한데, 속을 잃는다는건 참 슬프겠지

타인을 돕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충분히 뜨끈해 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3) 콩자반슈빵의 교훈


빵집밖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어...


참새에게 콕콕 쪼임을 당하고 뜯어 먹히며 아파하는 슈빵을 보며 개똥밭에 구르며 상처난 자아를 보는 것 같았다.

이리하면 속을 담아도 쏟아지지 않을 것이다. 케첩 모자가 다 막아 줄 것이다.

그렇다. 케첩 모자를 빌려준 소세지의 도움으로 참새의 쪼임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낸 슈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낀다. 고립되기 딱 좋은 프리랜서일수록 사람들과 연결되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고 기회가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싶은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사실 슈크림이 꼭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왜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다들 슈크림을 찾아올 테니까 나도 찾아야겠지.


네번째 슈빵의 이야기에 우리의 모든 고민이 담겨있다. 다들 슈크림을 찾으니까 나도 찾으러 가는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슈크림이 왜 필요한지도, 왜 넣어야 하는지도 모른채 자꾸만 슈크림을 찾는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슈크림빵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한계 때문이 아닐까. 무작정 슈크림을 찾는일보다 나는 어떤 빵으로 살고싶은가를 사실 먼저 고민했어야 한다.


고양이들이 먹는 참치 삼각김밥이 맛있어 보여서 먹게 된 슈빵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음을 알게된다.

비록 삼키기 싫을만큼 맛이 없지만 그것이 내 입맛인지 아닌지는 먹어보아야 알 수 있다.


너희는 어떻게 알아? 좋아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게 어디에 있는지?


먹다보니 알게 됐다냥.
하다보면 뭐가 좋은지 알 수 있다냥.
일단 해보는 거다냥. 너도 한 입 먹어볼테냥?

 

나는 자기보호본능이 강한사람이다. 그래서 20대에 원없이 도전해보지 못했다. 항상 부모님의 안돼! 말라꼬!! 그 말라꼬!!! 한마디에 나는 대꾸를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무조건 해야 되겠다고 할 만큼 간절한 지 어쩐지도 모른채, 말라꼬!의 저주에서 이제서야 풀려나 이토록 마음고생을 한다.


나를 안전하고 따뜻한 아랫목에만 방치 해둔 엄청난 벌을 서른여덟에 혹독하게 치르다니!



아직 자신만의 슈크림을 찾지 못한 네 번째 슈빵은 나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행복해보였다. 언젠가는 자신만의 슈크림을 찾을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느껴졌다. 꼭 찾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찾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니. 어쩌면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궁극의 결론이 아닐까?



5개의 슈빵들이 마치 순례길을 떠나는 우리들의 모습같았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그 길을 다녀오면 정말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걷고 또 걸으면서 내가 그토록 찾고싶어하는 슈크림을 정말 찾을 수 있을까?


슈빵들은 완벽하게 자신이 원했던 이상적인 슈크림을 찾은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완벽한 슈크림을 찾기보다는 나 스스로 슈빵에 의미를 부여해보는 것은 어떨까.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일에서 같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슈크림보다 '의미부여'가 먼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부여하는 것



넌 도대체 어떤 슈크림을 찾겠다고 이렇게 힘을 주고 글을 쓰냐고 나에게 물어본다.


나의 완벽한 슈크림을 찾겠다는 생각은 이제 없어. 대신에 나는 ____ 한 삶을 살고 싶어. 라고 먼저 의미 부여를 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 맞는 슈크림을 만들거나, 빌리거나, 도움을 구하거나 한다면 조금 더 빨리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한 달 동안 글을쓰면서 명확하게 딱!! 아!!! 이거야!! 이거였어! 하는건 없었다. 하지만 31일 째 되는날 한번 더 글을 읽고 쓰면서 '의미부여' 라는 다음 스텝을 밟게 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여러분들은 어떤 슈빵이 되고싶으신가요?
그래서 어떤 슈크림을 채우고 싶으세요?



참고도서: 내멋대로 슈크림빵(김지안 그림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