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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마마 May 18. 2021

말보다 글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스피커

내 안에 존재하는 모순된 욕망을 바라보기

너는 강사도 좋지만 어쩜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써? 

정아, 너 아이들 한번 가르쳐봐. 이렇게 잘하는데 더 돈이 될 것 같은데? 


 나를 혼란스럽게 한 사람들의 피드백과 나 스스로도 그러한 부분을 느끼면서 부터 내안의 공존하는 모순된 자아와 욕망에 대해서 나의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충돌을 경험한다. 그런데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진실한 노력을 하지 않고 '조작된 자아'를 만들어 내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이 '조작된 자아'를 만들어 내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조작된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동일시가 심해지면 점점 현실적 자아와 멀어지게 되고, 자기가 조작해 낸 가짜 자아의 형상을 진짜로 믿어 버리게 된다. 진실한 나는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고 정작 자기실현에 써야 할 에너지는 자기 조작을 위해 쓰인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1. 내안에 공존하는 모순된 첫번째 욕망 


말을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글이 좋은 사람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혀지기는 싫다.  가수 이효리씨가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며 한 이야기다. 내 안에 있던 모순을 수면 위로 드러내준 효리씨 덕분에 서로 상반되는 모습을 껴안고 사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내 안에 있던 서로 상반되는 모습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갈팡질팡하며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좀처럼 명확하게 결론 내려지지 않는 우유부단한 내 모습이 정말 싫었다. 무엇이든 속도감있게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좋아하는데 겁이 많아졌다. 서른 여덟이라는 애매모호한 나이에 자칫 잘못시작했다가 정말 이 길이 내 길이 아님을 발견하는날 마주하게 되는 절망적인 감정과 이 욕망이 내 욕망이 아님을 알게 되는 날 끝도 없이 허무할 것만 같아서자꾸만 신중해지는 내가 되었다. 


내 안에는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것들이 존재한다. 글을 쓰면서 더더욱 날이 서도록 다른 것들을 같은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이 불편했다. 


나는 말을 하는 직업이다. 물론 말을 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말을 함으로써 돈을 받는 직업이다. 하지만 나는 글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특히 내가 하는 말은 아주 많은 다수를 상대로 하는 실시간 공개적인 말하기로 누가 들어주지 않을까봐. 이의를 즉각적으로 제기 할까봐. 틀릴까봐. 누군가의 못마땅한 눈빛에 주눅드는 내 모습이 드러날까봐 늘 조심스럽고 마음이 쫄렸다. 나의 긴장을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강의장에 들어가던 날들 속에서 나는 내 일이 좋으면서도 너무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글은 말에 비해서 조금 더 편안했다. 누가 읽어주고 공감해주면 참 많이 고마웠고 또 읽어주지 않아도 그냥 그런가보다 할 수 있는 나름의 단단한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로하는 텐 미닛 강의를 연재했다. 읽는 시간이 대략 10분 정도가 걸리는 글을 쓰는 일은 의외로 양이 많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내가 블로그에 긴 글을 쓰는 일은 시간은 비록 비슷하게 걸릴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큰 마음을 먹는다거나 대중들 앞에 나설 때 처럼 큰 긴장감을 유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살림 경력 30년이 넘은 엄마가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실 때 느끼는 편안함에 가까웠다. 일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늘어지는 편안함은 벗어나고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처럼 찰랑찰랑 넘치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으로는 내 일을 오랫동안 사랑할 수 없다.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글쓰는 삶에서 편안함을 느끼다보니 이게 뭘까? 라는 생각과 함께 내 정체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종종 강의평가를 보면 또 다른 사실을 만난다. 나의 목소리와 분위기를 좋아해주는 사람들로 부터 힘을얻고 애써서 촬영한 영상속의 내가 괜찮아 보이는 날들도 있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자아상(self image)과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이미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지나치게 무지하거나, 내가 나를 바라보는 자아상이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되어 있을 때다. 물론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그 편견과 싸워야 한다. "그건 너답지 않아!", "나다운 게 뭔데?" 이런식의 대사가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타인의 눈에 비친나'와 '내 눈에 비친 나'는 항상 충돌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글을 쓰는 것과 말을 하는 삶들이 떨어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글을 쓰면서 내 분야에 대해서 생각정리를 할 수 있었고 한줄의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본 수많은 레퍼런스로 인해 누군가 톡 치기만 해도 주절주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내공도 생겼으니까.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말에서도 자신감이 생겼다. 글을 쓰면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고 이 습관은 강의교안을 만들때에도 보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끔 확장되었다. 


물론 여전히 발행버튼을 누르기 전까지의 나는 열심히 썼다가 지울 수 있는 하얀 백지 위에서 뒹굴 뒹굴 편안하게 숨을 쉰다. 하지만 대립되는 것들이라 여기며 글을 쓰는 일을 지속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말을 하는 것도 잘 할 수 없었을것이다. 항상 상반되는 것들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곤 했는데 여기로 부터 자유로워지니 나는 말보다 글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강사라고 날 선 내 소개를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상에 말을 잘하는 강사는 너무 많지만 말보다 글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강사는 조금 더 신선하지 않을까. 






2. 내안에 공존하는 모순된 두 번째 욕망 


성인교육을 하고있지만 유아교육이 편안한 사람 


나는 주로 대학생들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성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일은 힘이 많이 들어간다. 아이를 가르칠 때 처럼 오구오구 이렇게 잘했어? 라는 변화의 증거를 발견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삶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내용일수록 진리에 가까운 것들이 많다. 특히 우리가 오래전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고 뻔하다고 여기는 내용들이다. CS를 강의할 때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이 왜? 라는 것을 해결하는 일인데 이것에 대해서 방어벽을 치고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서는 날은 멘탈이 탈탈 털리기 일쑤다. 그래서 힘이들어가는 성인교육에서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할때가 있다. 


반면에 아이들을 가르치는일은 다르다. 


말이 늦어지는 아이와 함께한 그림책을 읽은 지난 4년의 시간과 자발적으로 뚝딱뚝딱 기획한 독후활동, 여러가지 감정표현을 위한 교육 등 나만의 무허가 홈스쿨링은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재미있었다. 새롭고 재미있는 생각들이 줄줄이 소세지 처럼 물고늘어져서 이걸 언제다 구현하지? 나는 디자인 능력은 이렇게 까지 안되는데? 라고 나의 한계와 해결하기 위한 방법 까지도 생각이 확장되곤 했다.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말에서 뼈대가 느껴질 만큼 자신감도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이런 저런 나의 활동들을 올리면 엄청 적은 팔로워의 수를 감안하면 다른 게시물들보다 확실히 반응이 좋았다. 엄마들의 생각하는 시간, 찾아보는 시간을 줄여주는 자원을 제공하는 일이기 때문에 볼만한 가치가 있는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제외하더라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이의 변화에 처음으로 가르치는 사람의 보람을 느꼈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유아교육과 관련된 어떠한 이력도 없기 때문에 방향을 돌리려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른다. 이제 내 일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왜 ? 뭐땜에 굳이 다시시작해? 그냥 나의 아이니까 더 즐거웠을거라고. 이 업이 내 일이 되면 달라질거라고 다독거리기도 했다.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 잘못하는 것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로 이 고민은 자기발견을 하게 되는 마지막날 까지 나를 고민스럽게 할 것 같다. 


사람들은 내게 이 모습도, 저 모습도 어울리고 괜찮은것 같다고 했다. 


내안에 공존하는 모순된 욕망덩어리들을 어떻게 인식하는 것이 좋을까? 

하나를 버리는 것이 맞을까? 

둘의 교집합을 찾는 것이 맞을까? 


고민끝에 내린 여러가지 답안지 중의 하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힘들어하는 엄마(성인)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어떨까. 아이들과 감정교류를 가면서 소통하기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위한 툴킷을 만들고 사용가이드를 알려주는 사람이 되는건 어떨까? 라는 흐릿한 답안지를 일단, 지금은 적어본다. 



내안에 모순된 여러가지 욕망들은 내것일까? 

이 중에서 남의 것은 없을까? 잘 몰라서. 좋아보여서 욕망한 것들을 내 것이라고 착각한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나의 핸들을 꽉 붙들 수만 있다면, 나를 향한 온갖 과도한 기대와 악성 댓글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의 스토리를 내 영혼과 내 힘으로 써 나갈 수 있다. 내 마음을 내 삶의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 마음을 나라는 전체를 이끌어 가는 최고의 조력자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비친 모습을 끊임없이, 좀 더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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