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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마마 May 22. 2021

밤11시면 밖으로 도는
엄마의 속사정

에스프레소 쓰리샷보다 강력한 중독

에스프레소 쓰리샷 보다 강력한 활기를 만드는 엄마의 밤 11시 놀이터를 이야기합니다.



나에게 일과 삶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떠한 형태로 내 삶에 존재할까?

질문이 조금 달라졌으면 좋겠다. 당신의 삶에서 일과 일이 아닌 삶의 균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더 정확한 질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이상적인 사람의 대답은 일이 곧 놀이가 되는 것이다. 물론 덕질이나 좋아하는 일을 절대로 업(業)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내가 정말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하는 기대로 천국의 계단을 밟아보고싶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과 일이 아닌 삶의 경계가 뚜렸한 삶을 살아가며 일이 아닌 삶의 비중이 커지기를 바랄 것이다.


일반적으로 워라밸을 정의할 때는 물리적인 시간의 양으로 계산을 한다. 업무시간, 출퇴근 시간, 점심이나 공식적인 저녁시간으로 8시간에서 12시간- 길게는 14시간씩 일을 하다가 퇴근 후의 삶을 살 것이다.

일하지 않는 시간이 단순하게 늘어나면 우리는 워라밸을 적정하게 이루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나는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한다는 책을 보며 깊은 좌절감을 느낀 적이 있다. 분명 퇴근 후 삶은 하루에 5시간 정도 주어지지만 집안일과 육아와 같은 일로 시간을 쓰고나면 나에게 남는 오리지널 내-시간은 30분 남짓이기 때문이다. 잠을 줄이거나 다른 일들을 포기하지 않으면 마련하지 못하는 일이 아닌 삶이 나는 일주일에 4시간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떤 사람들은 4시간만 일할 수 있다니! 내 인생은 뭐지? 하는 현타가 온다.


1) 일하지 않는 시간이 긴 것과 워라밸은 다르다.


퇴근 후 삶이 아무리 길더라도 온전히 내가 주도적으로 쓰는 내 시간이 없다면? 주도적으로 쓰는 내 시간의 질이 좋지 않다면? 그것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까?


프리랜서로 스터디 카페, 북카페,  스터디카페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다가 먹는 것이 부실해지고 쓸데 없이 커피와 디저트류에 과한 지출을 하게 되어 나만의 홈오피스에서 일을 한다. 큰 책상에 레이저 프린터기도 갖다놓고 노트북과 아주 큰 사이즈의 모니터도 두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도 듣고 책상 앞에 놓아둔 커피 머신으로 캡슐 커피를 내려 마시는 재미도 쏠쏠히 느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서 일을 하다보니 집에 있는데도 퇴근이 하고싶어진다.


2) 집에 있는데도 퇴근이 하고 싶어.


하루종일 일 생각만 하는 것 같을 때, 나도 모르게 아이 저녁을 챙겨주고 잠시 아이가 자신의 놀이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반사적으로 책상앞에 앉아서 강의 교안 파일을 열게 되었다. 일과 일이 아닌 삶의 경계가 완벽하게 흐려지면서 나의 여가시간이 조금씩 침식을 당했다. 동시에 업무시간도 중간 중간 눈에 보이는 집안 일들로 침식을 당했다. 한 때는 그 경계가 없는 삶을 동경했지만 나는 아이에게 잠깐이라도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려면 장기간 이런 삶을 지속하는 것은 누적된 피로가 본업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불균형을 감지하는 신호를 알아차릴 때는 언제일까?


내 삶에서 일과 일이 아닌 것의 균형은 뭘까? 이만하면 일과 여가가 균형이 맞는 것 같아. 이정도 쉬면 일에 몰입하는데 충분한 휴식이 되는 것 같아. 라고 생각하는 경계선은 어떻게 가져야 할까? 균형이 맞지 않다고 느끼는 기준은 뭘까?


나에게 아, 잠깐! 이라고 멈춤의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이를 대할 때 조급함이 생기는 것이다. "써니야, 빨리 치카해. 빨리 자야지! 빨리 하자. 엄마 일해야 해." 라고 표정으로 아이에게 재촉을 하는 일이 빈번한 주간에는 진지하게 균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는 더이상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지 않겠구나. 하고 말이다. 늘 미안함을 차곡 차곡 쌓아놓고 빚쟁이처럼 어느날 한꺼번에 갚는다고해서 해결이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커리어 강의를 할 때 주로 사용하는 툴킷이 있는데 이것을 주섬주섬 챙기는 날 아이는 툴킷 한 세트를 열어서 수십장의 카드를 구경했다. 수십 장의 카드 중에서 단 2장의 카드를 금새 고르며 아이가 내게 보여주며 이야기를 한다.


" 엄마, 엄마에게는 이 2가지가 필요해! "


강의 때 사용하는 콘텐츠위드 툴킷


맙소사.

아이가 고른 카드는 여가시간과 짧은 출퇴근 시간(원래 카드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아이는 해석을 했지만 내가 밖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 올 때는 늦은 귀가가 잦으니 저녁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엔 7시 반까지 왔으면 좋겠다는 거다. )


" 써니야, 왜 이걸 골랐어? "

" 엄마, 잘 들어봐. 엄마에게는!!(강조) 엄마의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내가 미스몬테크*** 드라마 시작하기 전까지는 집에 오라고 했는데 맨날 늦잖아. 그래서 엄마에게는 이 카드가 필요해. 앞으로 잘 지키면! 잘봐! 이 카드 뒤에 보이지? 여기에 내가 엄마가 지킬때 마다 스티커를 붙여줄거야! "


똑 부러지게 한마디 한마디에 뼈가 있는 이야기를 아이는 내게 하고 있었다. 강조하는 온갖 제스쳐를 취하며 자신의 의견을 아주 강하게 어필하는 모양새가 그간 쌓인 아쉬움을 말해주었다.  그저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본래의 취지는 우리가 커리어 방향을 생각 할 때 우선순위로 고려하는 것들에 대해서 골라보는 용도로 사용하는 툴킷이 이렇게 사용이 되면서 나의 일과 여가시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4) 나에게 일은 목적인가? 수단인가?


내가 궁극적으로 일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은,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은 즐겁다. 처음에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지만 자기발견을 위한 글을 쓰면서 내 일에 대한 의미도 선명해졌다. 나에게 일은 분명 목적지향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일은 내가 독립적인 인격체가 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나는 2년 전부터 줄곧 독립적인 인격체가 되고싶었다. 누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내가 스스로 나의 먹고사니즘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 물려받을 자산이 없어도 누군가 빵빵한 월급봉투를 갖다주지 않아도 써니를 경제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나에게는 일이었다. 써니의 독립을 응원하는 엄마가 되려면 나 부터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은 곧 나에게 수단이다. 수단에 대한 비중을 70%, 목적에 대한 비중을 대략 30%정도 둔다고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아이에 대한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일로 귀결된다. 이 울타리는 경제적인 것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지지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일과 여가의 불균형으로 아이에게 불똥이 튄다면? 내가 바라는 삶은 아니다.



5) 내 삶에서 일과 여가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방법


재촉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히 생각해본적이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업무에 대한 데드라인을 지키는 것은 나에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조금 적게 벌더라도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천천히 가야한다는 답이 나왔다.


물론 지금 나에게 밥벌이는 1순위다. 하지만 모든 시간과 노력을 제안서를 쓰고 나를 홍보하며 들어오는대로 일을 넙죽 넙죽 받게 되면 일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이 덜거덕 덜거덕 거리기 시작한다. 결국에는 누군가의 시간을 쓰는 일인데 그 시간을 살 수 있는 여력이 한계가 있다면 조율이 필요하다. 마음이 아무리 조급하더라도 짜증과 신경질로 터질 것 같은 엄마는 되고싶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와의 정서적 유대감 때문에 일을  놓기에는 나는 밥벌이도 해야하는 사람이다. 그럼, 천천히 가더라도 그 천천히를 수용하는 태도가 나에게 필요하다.


여러 모임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또래의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1인분의 삶이 참 부러울때가 있다. 원없이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할 수 있겠다... 3-4시간만 잠을 지도 그 피곤함을 누군가에 대한 짜증으로 폭발하지 않아도 되는, 밥을 챙겨주거나 아이의 유치원 숙제나 준비물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계절옷이 바뀌고 빵구난 아이의 티셔츠, 양말의 여분이 없어서 전 날 쿠팡 로캣배송에 애타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1인분의 삶이 너무나 부러울 때가 있었다.


얼마 전, 느닷없이 아이의 유치 뒤에 영구치가 올라와 급하게 병원을 다녀와야 했다. 진료 후 지혈을 하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괜찮다고.. 말을 건냈다. 씹는 일이 힘들까봐. 오늘하루는 죽을 먹자. 라고 토닥 토닥 등을 두드려주고 싱크대 앞에서 계획되지 않은 소고기 야채죽을 정성스럽게 끓여야 할 때 누군가는 이 시간을 일로 풀가동 한다는 생각을 하면 부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20대에 그렇게 지금처럼 악착같이 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 후회를 했다. 왜 나는 그렇게 앞길이 9만리 같을 그 시절에 지금처럼 사람들과 연결이 되어 사이드프로젝트를 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주말이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눈도 못뜨는 내 귓가에서 "엄마~ 노올자~"라고 속삭이는 아이가 있기에 내가 바로 나로 설수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천천히 일함으로써 줄어드는 수입에대한 불안함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저녁 6시, 7시가 되면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아이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육아 퇴근까지 함께 논다. 육퇴 후에는 나도 놀 차례다. 좀비같은 얼굴로 퍼질러 자고 싶다가도 다시 몸을 일으켜 나만의 플레이그라운드로 나온다.




6) 진정한 일과 여가의 균형은 주도적인 나만의 신나는 일이 있을 때 가능하다.


나만의 놀이터로. 일과 여가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때 나는 물리적인 시간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질문을 드려본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만의 신나는 일이 있으신가요? 라고!

퇴근 후 아이를 돌보고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모든 일들을 끝내고 천근 만큰 종아리에 등짝에 모래주머니를 단 것 같은 무거운 몸 마저도 일으키게 하는 신나는 일이 있으면 그것은 진짜 워라밸 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이 많은 사람이 시간 부자가 아니다.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사용하것이 중요하다. 주 사소하더라도 내가 주도적으로 루틴하게 하는 나만의 놀이를 나만의 플레이그라운드에서 할 수 있다면 단 30분이라도 좋다. 그 30분의 순수한 나만의 리추얼이 일하는 10-14시간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가족에 대한 경제적인 책임감으로 감히 취미를 꿈꿀새도 없는 가장일수록, 풀타임 전업엄마일수록, 늘 '죄송'하다는 말이 준비된 워킹맘일수록 하루에 30분, 아니 10분이라도 나만의 리추얼을 가졌으면 좋겠다. 질서정연한 삶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음을 믿는다. 다른 모든 일들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들쑥 날쑥 사건 사고가 터지기 일쑤지만 매일매일 언제든지 텐트를 펼치는 것 처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나만의 최소한의 놀이터를 꼭 간직하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 단 10분의 명상도, 3줄 글쓰기도 나를 뛰어놀게 하는 놀이터가 될 수 있고 이러한 최소한의 질서가 우리를 버티게 하는 코어근육이 된다.


나의 강의자료


한 때는 워킹맘의 자기계발이 몇 푼 안되는 월급을 탈탈 털어서 명품가방을 사는 일 만큼이나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을 하는 사람들일 수록 (직장인이라면 더더욱) 온전히 나만을 위한 놀이터로 걸어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7) 내 삶의 밸런스 포인트는 바로 글쓰기와 독서


나의 놀이터는 글쓰기와 책읽기다. 노트북과 책만 있다면 나는 언제든 그 곳에서 신나게 뛰어놀 준비가 되어있다. 잠 1시간이 간절하지만 이것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잠들 수 없을만큼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은 읽는 일과 쓰는 일이었다.


브런치의 하얀 백지위 깜빡이는 커서와 함께 같은 속도로 내 심장도 두근두근 거린다. 피아니스트 신기원님의 스윙피아노째즈를 들으며 투닥 투닥 타이핑을 한다. 나는 그대로 비행한다. 나는 새가 된다. 이 놀이터에서 나오는 순간은 너무 아쉬워서 항상 끝을 부여잡고 싶지만 기다린다. 빡빡한 업무시간 뒤에 있을 나만의 근사한 놀이터만 생각하면 하루를, 일주일을 버틸만 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밤 11시가 되면 내가 숨을 고르는 나의 놀이터로 온다. 30분간 아주 신나게 뛰어놀며 생긴 활기는 에스프레소 쓰리샷보다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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