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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마마 May 31. 2021

내-일의 열정과 냉정사이

열정을 지속하는 동기 루틴

나는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열정이 뜨뜨미지근해지는 순간이 온다. 나만의 리추얼을 만들어보겠다고 시작한 미라클모닝, 감사일기가 2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실패로 돌아가거나 비장한 마음으로 시작한 브런치에는 몇 달이 지나도록 글을 하나 발행하는 일이 힘겨워 진다. 감사히 다니겠다던 직장에 출근하는 월요일이 힘겹고 마음과 시간을 쏟은 업무에 대한 피드백이 좋지 않을 때는 왜 내가 이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무거운 의심마저 들곤한다. 차갑게 식은 열정에 뜨거움을 불어넣기 위해 나의 '열심'을 만들어 줄 무언가를 찾다보면 누군가는 자꾸 쉼을 강조하고 누군가는 환경이 문제라 하고 또 누군가는 목적이 문제라고 하니 무엇을 믿어야 할지 헷갈리기만 하다.  


번아웃, 의욕상실, 방황 등으로 표현되는 단어는 일을 하는 동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기장에 쓰고 싶지 않은 이 부정적인 뉘앙스가 가득한 단어들이 때로는 뜨거운 열정 만큼이나 우리에게 중요한 신호가 된다. 왜냐하면 느슨해지는 동기는 나를 돌아보고 왜? 무엇때문에? 라는 것을 스스로 질문하면서 잠시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동기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는 ‘자율성(autonomy)’, ‘숙련도(mastery)’, ‘목적의식(purpose)’으로 나뉜다. 오늘은 내가 일을 하면서 냉정에서 열정사이를 오가며 동기부여를 했던 과정을 소개한다. 


목적의식->환경변화->자율성->숙련도->피드백->일의 의미 -> 목적의식 

과 같은 루틴이 지금 하는 내 일의 서사를 만들었다. 


1) 자율성이 보장되는 환경설정 


육아를 전업으로 하는 시기에서 워킹맘으로 사는 2년동안 나에게도 여러차례 열정과 냉정이 오가는 날들이 있었다. 일단 사회생활만 다시 시작하면 그 어떤 일도 감사하게 생각하겠다던 나의 마음, 몇 년 만에 받았던 첫 월급을 현금으로 인출해서 부모님께 갖다드리러 가던 설렘은 1년 3개월쯤 극도로 찾아왔다. 너무나 루틴했던 업무에 비해 내 열정은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내가 하는일에 어떠한 의미도 발견하지 못했을 당시, 나는 탄성이 없어져 버린 고무줄 처럼 축 늘어져 1시간동안 할 일을 하루종일 붙들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했던 특단의 조치가 바로 퇴사 후 프리랜서로 전환한 일이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방법은 아닐지도 모른다. 촘촘한 직장인의 삶에서 갑자기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스케줄이 없어지면 대개는 일시적으로 공허함을 느끼며 매우 불규칙하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나는 당시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고 월급보다 많이 벌어야 40대에 남들 만큼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것이 발화점이 되어 내가 100% 내 능력치를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가 바로 강의를 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자율성을 보장받는 환경이 필요했다. 


의미있는 일을 하기 위해 일하는 환경을 바꾸는 것으로 자가발전하는 동기를 만들었다. 내 하루를 내가 설계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에 도움을 구했고 글을 썼고 정말 하고 싶었던 교육과정개발을 했다. 물론 수입에 대한 불안함이 너무 커서 먹먹하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1년 4개월 동안의 변화보다 퇴사 후 6개월간의 변화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포트폴리오를 매달 버전 업데이트 하며 알게 되었다. 


아이가 아프지 않으면 딱히 내 스케줄 상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텅-빈 하루를 나의 의지로 질서정연하게 만드는 일은 수동적인 삶을 살 때 보다 훨씬 더 큰 의지가 필요하다. 본능적인 욕구를 참으며 열정을 만들 수 있는 지표는 단 하나,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눈으로 확인 하며 스스로를 달래는 것 밖에 없었다.


2) 숙련도(mastery)


담당자와 전화를 하면서 나를 어필하는 자신감은 이미 목소리에서 달라져있었고 보내는 이메일에는 예전보다 차츰 전문성이 녹아들었다. 어떤 곳은 "너무 과정설계를 잘 해주셔서 저희가 더 이상 피드백을 드릴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저희는 강사님 의견에 따를게요 " 라고 전적으로 나의 의견대로 진행이 되는 곳들도 생겨나면서 나에게는 일하는 방법이 한겹 한겹 쌓였다. 분명 1년 전에는 없던 능력이 나에게 생겼고 이 작은 차이가 내 앞에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견딜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다.  


직장인이었을 때 나의 일은 철저히 변두리 서서 누군가의 부를 증식시키는 역할 중 하나였지만 위태로운 마감을 했던 컨설팅 업무와 글쓰기는 차곡 차곡 나의 래퍼런스가 되었다. 



3) 피드백 


중간에 일이 끊겨서 허덕 허덕 할 때에는 내가 왜 퇴사를 했을까? 이렇게 혼자 살 능력도 안되는데 왜 퇴사를 했을까? 나의 무모함을 반성하기도 했다. 아무런 준비없이 퇴사를 하면 안된다는 커리어 코치들의 글만 자꾸 내 눈에 보이고 점심시간에 커피를 사러 갔다가 마주하게 되는 직장인들의 분위기를 보며 나는 잉여인간이 된 것 같았다. 


할-일이 없어서 글을 썼다. 발행버튼을 누르는 설렘은 모니터에 가득찬 하얀 여백을 채울 수 있는 동기로 충분했다.  하지만 참 더디게 올라가는 구독자 수와 공감, 댓글들은 나의 열정을 냉정하게 했다. 


1명의 구독자에서 시작하여 120명이 되는 일, 누군가는 일주일 만에도 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6개월 이상이 걸린 참 지겨운 하루하루였다. 브런치를 몇 달이나 하지 않았다. 들여다 보기도 싫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나의 솔직함을 탈탈 털어 쓴 이야기들이 시큰둥한 것을 보면서 인정욕구가 생기는 것이 싫었고 눈치보는 글을 쓰는 내가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몇몇 사람들이 내 브런치 에필로그에 응원의 글을 남긴 것을 보면서 차갑다 못해 얼음이 되어버린 동기의 조각들이 스르르 녹아서 뜨거워 졌다. 


그 날 내 옆에 있던 지인은 30분간 나의 들떠 있는 수다를 들어주느라 매우 힘들었을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의 피드백으로 잃어버린 열정이 다시 차올랐다. 나는 지금도 찾고 싶다. 나에게 댓글을 달아준 그 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진심으로 같이 밥을 먹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브런치 댓글 


댓글들은 내가 글을 지속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의지를 공언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글에서 나의 의지를 공언하고 일종의 책임감이 지렛대가 되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딱히 지키지 않아도 손가락질 할 사람이 있을만큼 유명한 사람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나와 하는 약속 일 수 있지만 분명 누군가는 내가 나와 하는 이 작은 외침이 매번 지켜질 때마다 그것을 들여다 보며 힘을 받을 것이고 조용한 울림이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서사가 누군가의 래퍼런스가 된다는 창고살롱의 메시지를 보며 나 또한 같은 맥락에서 나의 서사를 이어나가고 싶다. 



강의평가 

두려움은 강단에 서는 순간 사라진다. 과정을 열기로 결정이 나고 강의를 시작하기 전날까지 밀려오는 부담감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정작 강의하는 그 시간에 내가 온전히 몰입하는 느낌과 배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긍심 때문이다. 물론 100%를 만족시킬 수 없겠지만 이렇게 좋은 피드백으로 가득한 강의를 할 때는 오늘도 내 일에서 한 겹 성장했고 내 일의 가치를 다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나를 지속하게 만든다. 



강사님, 참 인생을 멋지게 사시는 분 같네요
매일 3일 동안 같은 강의를 계속 듣는데도 들을 때 마다 새롭네요. 너무 배울게 많은 것 같아요. 강사님 하시는 것 중에 다른 과정은 추천하실 만한 것 없을까요?     
강사님, 목소리, 강의 모두 최고입니다. 
현장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긴시간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조금만 더 연습하면 될 것 같아요 
강사님 너무 좋았어요. 업무현장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겠습니다. 내일부터 신입교육시켜야 겠어요 

 


지인의 피드백 


그냥 지인이 아니라 전문가가 나에게 해주는 진심어린 응원과 피드백은 그 어떤 말 보다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 불안함이 정상일까? 이렇게 부족한 것만 보이는 나의 까다로움이 정상적인 것인가? 라고 답도 없는 물음에 고민하는 내게 이 길을 먼저 갔던 이들이 건네는 따뜻한 응원은 어두컴컴한 길을 환하게 비추는 가로등이 된다. 


딸의 존재 


어쩌면 내가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아이의 존재이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내가 일을 하게 하는 가장 큰 동기라는 것을 나는 받아들인다. 그 어떤 큰 가치가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설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간접동기 ( 정서적 압박, 경제적 압박, 타성) 는 좋지 않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때때로 갈등한다. 아무리 가치있는 일들도 이 아이를 최소한 책임지지 못한다면 나는 지속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물음에 나는 솔직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____만큼의 수입을 만드려면 나는 이번 달에 얼만큼의 강의를 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걸 하지? 라는 생각해서 이렇게 하려면 도대체 누구를 만나야 하고 내가 무엇을 하면 될까?를 질문하면서 나는 움직이는 사람이 되는 중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이 겨루는 줄다리기에 힘이 빠지다가도 아이가 마음을 담아 곳곳에 남긴 애정표현에 오늘도 힘을내는 엄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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