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씨가 부르는 When We Disco (Duet with 선미) 의 무대를 보며 그에 대해 존경심이 들었다. 단순히 노래 실력이 좋아서? 춤 실력이 멋져서? 라고 하기에 그의 무대는 아티스트로서 궁극의 경지에 오른 것 같은 그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반백이 넘은 나이에 내 심장을 심폐소생 할 만큼 10대 못지 않은 살아있는 눈빛이 그의 전부인것 같다.
그가 가진 살아있는 눈빛이 부럽다. 그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딸아이는 묘한 중독이 되어 하루종일 흥얼거리고 몸짓을 따라한다. 나도모르게 따라하게 되고 가만있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몸에 리듬감을 불어넣게 되는 그의 무대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지방의 한 상조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아침 조회 때 진행하는 교육의 한 꼭지로 '염습' 에 대한 내용을 기획한 일이 있다. 장례지도사 분들이 정성스럽게 시범을 보여줄 수 있도록 자리를 세팅하고 많은 영업사원분들과 사무직 직원들이 함께 이 과정을 지켜봤다.
여름이 되지 않았음에도 눕혀진 마네킹을 조심스레 감싸는 장례지도사 분은 열과 성을 다했고 이마에는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10분정도 지날쯤 어수선한 사람들의 소음이 사라지고 고요한 분위기만 남았다. 장례지도사의 목소리와 손길에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몰입하며 숨죽여 지켜봤다. 나 또한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교육을 들으시던 분 가운데 한 분이 울고 계셨다. 가족중에 아픈 분이 계셔서 곧 다가올 이별에 대한 슬픔일 수도 있고 자신의 삶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이 북받쳤을수도 있다.
사람들을 교육해야 하는데 CS를 하더라도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는게 너무 싫어서 장례지도사분 한 분께 인터뷰를 요청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고 또 복지사로 함께 일을 하는 영업사원들 중에서 잘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행사를 진행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고인이 된 분들의 입관 사진을 보면서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내 삶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생각했다. 누가 돈이 많은지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지는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금덩어리를 싸들고 갈 수 없는 마지막 순간에서 '이만하면 잘 살다가 간다.' 라는 마음을 갖고 미련없이 떠나려면 내 끝그림은 어떤모습이면 좋을까?
교육여건이 상당히 좋지 않은 지역에서 아이의 미술학원을 알아보려고 집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곳 부터 가까운 곳까지 두루두루 다녔다. 집 근처에 있는 홈스쿨링을 하는 미술학원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오전에 시니어미술을 가르치신다고 하셨다. 20평이 채 안되는 공간에 만든 아뜰리에를 둘러보며 여전히 배움에 대한 열정과 가르치는 일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오전에는 시니어 심리 미술을 가르치시고 오후에 아이들을 1:1로 지도하시거나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 하고계신다고 했다. 손녀가 초등학교 5학년이니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것 같았다.
아이는 자본의 힘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으리으리하고 멋진 학원을 좋아할 줄 알았지만 일흔 쯤 되시는 선생님의 작업실이 좋다고 했다. 젋고 예쁜 선생님과 알록 달록 눈이 돌아가는 인테리어에 마음이 홀딱 빼앗길법도 한데 선생님이 자신에게 이야기 하는 목소리가 너무 따뜻하고 자신의 그림을 잘 봐준다는 이유로 아이는 콕 집어서 단호하게 그 미술학원을 다니겠다고 했다.
1명에 10만원을 받는 수강료로 엄청 큰 돈을 버시지 않으시겠지만 이 나이에도 현역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며 카톡으로 열심히 상담안내문자를 보내시는 정성은 30대 선생님들 보다 훌륭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눈빛에서 총기가 느껴졌다.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하고 이것을 작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돕는일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고 계신 분 같았다.
아! 성공한 사람이다. 내 기준에서 그 선생님은 성공한 사람같았다.
자신의 자리가 있는 사람
오래 전 꽃할배들의 여행프로그램을 보며 해외여행열풍이 불었다. 한 시즌씩 끝날 때 마다 꽃할배들은 광고에도 많이 출연하셨다. 사람들은 저 나이에 비즈니스클래스를 타고 돈도 벌면서 여행을 다니고 거기다 광고계약까지 하면 수입이 엄청날거라고 부러워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노년의 모습과는 다른 아주 이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꽃할배들이 현역으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40대 조기 퇴직을 하며 점점 자신의 자리가 없어지고 불안한 사람들 사이에서 굳건하게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것은 반짝하는 인기로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몇 년전부터 유튜브를 보면 머리가 띵~할 정도로 수익파이프라인, 나는 일주일에 몇 시간만 일하고 얼마를 번다. 일하지 않고 월 ooo만원 벌기. 수익구조 만들기 라는 썸네일이 줄줄이 쏟아졌다. 부자되는 법을 알려준다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일하지 않고 월 얼마를 벌기? 일은 없고 돈만 있는 삶, 행복할까.
모르겠다. 내가 이래서 벼락거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70, 80세가 되어서도 내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내 자리가 있으면 좋곘다. 대신 지금보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지금처럼 애써 잘하려고 바들바들 하고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까봐 전전긍긍 걱정하는 마음때문에 한껏 올라온 숭모근이 드러나지는 않으면 좋겠다. 편안하게 숨을 쉬며 내 숭모근을 내릴 수 있는 여유가 가득한 선생님이면 좋겠다.
70세가 되어서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일 수 있는 내 자리가 있는 것.
나는 지금 이 일이 너무 힘들고 싫어서 빨리 후다닥 끝내놓고 불편하고 조이는 드레스를 훌러덩 벗어 던지듯하고싶지 않다. 이왕 하는 일을 오래오래 좋은 마음을 지키며 하고싶다.
나의 일에서 영원히 은퇴하지 않는 삶. 조벽 교수님 처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 나에겐 성공한 삶이다.
물론 그 때는 지금처럼 돈돈돈 하면서 수입에 대한 불안함은 내려놓을 만큼 먹고사니즘은 해결되면 좋겠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좋아하고 싶다. 내 일에서 전문성을 키워가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그 때는 정말 하고싶지 않은 일은 안 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서 내가 일하는 자리가 있다면 언제 마감하게 될 지 모르는 생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덜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정적인 수입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서 도전하기 보다는 안주하며 살았던 젊은 시절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고싶다. 끝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닐 일에 조바심을 내며 걱정했던 많은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고 그러지 말것을.. 하면서 한탄하는 일이 가장 최악이지 않을까? 내가 이루어 가는 길에서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알려주는 일이 아까워서 옹졸하게 '이건 내꺼야' 이걸 그냥 들으려고? 하면서 손에 꽉 붙들고 마치 대단한 노하우를 가진 사람인냥 가르침을 베푸는 것에 인색한 사람이 되고싶지 않다.
70세가 되어서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일 수 있는 내 자리가 있는 것
좋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연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
- 일주일에 10시간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
- 일주일에 10시간을 이렇게 글을 쓰며 나에대한 기록과 성찰을 지속하는 사람
- 일주일에 10시간을 선생님의 선생님으로 살기 위해 배움을 지속하는 사람
- 반짝 반짝 빛나는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기고 그 사람의 자리를 찾아주는 사람
인생은 실험실
나는 실험실에 들어왔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못하는지 어떤일에 미치도록 좋아하고 어떤일에는 기겁을 하는지 나에대해서 즐거운 실험을 해보고싶다. 상상으로 실험하지 말고 궁금하고 확인하고 싶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 직접 내자리를 벗어나 확인을 해볼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다. 그렇게 알게 된 나에 대한 정보로 내가 플레이어로 뛰어야 할 내자리를 더 뾰족하게 갈고 닦아서 편안함을 느끼고싶다. 앉고 앉아서 윤이날 대로 윤이나서 앉은 것 조차 느껴 지지 않는 편안한 자리를 만드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