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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Nov 17. 2019

가을바람에 떠오르는 코디

바바리코트와 스카프

이안 감독의 <색, 계>가 IPTV에서 무료 영화로 출시되었다. 개봉 때 본 적은 있지만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늘 두 번째 감상을 했다. 여전히 명화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이번엔 유독 탕웨이의 바바리코트가 매력으로 다가왔다.


<색, 계> 이안 감독 2007년 스틸컷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분위기에서 바바리코트는 가을 풍경의 화폭에서 빠질 수 없는 오브제다. 지인의 이야기 중에 ‘덕수궁 돌담길이나 정동길은 가을바람 속으로 바바리 자락을 휘날리며 가겠다’ 는 친구가 있다고 다. 난 이 친구가 참으로 멋진 낭만을 지녔다는 반가움이 일었다. 바바리코트에 스카프까지 휘날린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겠다.


스카프를 두른 아내의 모습을 좋아한다.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려 아이스크림과 같은 부드러운 스카프 감촉을 느낄 때면 페로몬향도 함께 피어오른다. 마이클 볼턴의 노래 You Are So Beautiful의 멜로디를 허밍으로 흘리며 좀 더 다가선다. 휘둥그레 놀란 눈빛의 아내는 경고의 레이저를 쏘아 분위기를 종식시키고 만다. 무드의 한계다.


아내의 스카프. 초상권이 뭐라고 만만한 맥주병에...


스카프의 아름다움에 취하면서도 간혹 마음 한켠이 저려옴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탤런트 김영애의 한복 스카프가 생각날 때이다. SBS 드라마 모래시계 전반부에 빨치산 남편의 뼈를 지리산 자락에 뿌리고 철로에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철로 위로 휘날리는 스카프의 슬로 영상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스카프 속으로 사라지는 김영애의 처연한 모습 또한 아릿한 새드 스토리로 남아있다.


또 한 사람, 영광과 고통을 동시에 안고 살다 간 맨발의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이다. 춤은 그녀의 운명이었고 니체의 철학과 바그너의 음악으로 서로의 예술적 영감을 교감했다. 러시아의 젊은 시인 예서닌과 결혼생활에 열정을 쏟았지만 어느 것 하나 비극으로 끝나지 않은 게 없었다. 자유분방한 삶과 비범한 재능으로 붉은 스카프에 휘말린 마지막 죽음까지도 평범한 것 하나 없이 살다 간 던컨. 던컨의 스카프가 조금만 더 짧았더라면 그녀의 운명은 또 어찌 되었을까, 라는 부질없는 가정을 해본다.


아침부터 내리는 가을비 속으로 찬바람이 일렁인다. 베란다 창밖으로 간혹 내려다보이는 바바리코트와 스카프 코디에 눈길을 보낸다. 이들의 이미지는 미학적 관점을 떠나서도 따스함이 주는 멋스러운 여유가 있다. 길 위에 낙엽이 구르면 기다려지는 가을의 정취가 아닐 수 없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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