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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Sep 01. 2019

별을 보면 떠오르는 별별 생각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보다

하늘가에 피어나는 무지개 따라
     지나버린 그 시절 돌아가고파......  


  이어폰을 끼고 저녁 산책길에 나선다. 토요일 저녁의 여유인지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오늘따라 노래 가사에 감정이입이 되어 남궁옥분의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를 반복해 듣고 있다. 인근 공원을 한 바퀴 돌고나서 잠시 벤치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을 바라보면 별별 생각이 스친다. 그리스로마 신화부터 칼 세이건까지.

  

  늦은 봄이 끝날 무렵에는 육안으로 목성 관측이 용이하다. 여름이 지나가면 토성 관측을 하면서 산책을 즐긴다. 이제 곧 추석 대보름이 되면 달과 토성은 근접 관측이 가능할 시기가 된다. 목성이 지고 토성이 뜨는 분위기다.   


2019.8.31(토) 밤 9시 30분 무렵 휴대폰 촬영



  밤하늘의 별을 헤다 보면 케플러나 갈릴레이가 아닌 뉴턴을 생각할 때가 많다. 뉴턴은 말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보라’ 


  뉴턴은 자신의 삶에서 학문은 치열하고 넓게 보았을망정 사는 것에는 서툴고 노잼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전형적인 연구자의 덕후 기질이라 여겨진다.  


  과학자들이 논문에 몰입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고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전자는 지식 탐구에 대한 존경이고, 후자는 가족과 사랑에는 노잼이라는 아쉬움이다.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라고 해야 민원이 없다). 

  하긴 슈뢰딩거 같은 물리학자는 묘령의 여인과 호텔에서 한 달간 지내며 그 와중(?)에 그토록 어렵다는 파동 방정식을 정리하여 발표했다. 놀면서도 해야 할 것은 했다는 것인데 부럽기조차 하다.  


  뉴턴은 명석한 과학자였지만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하면 엉뚱하고 맹한 구석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개와 고양이를 길렀다. 개와 고양이가 담벼락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크고 작은 구멍을 따로따로 뚫어 놓았다. 그러자 가정부가 물었다.

  ‘아니, 큰 구멍 하나만 뚫으면 개와 고양이가 함께 드나들 수 있는데 왜 두 개나 뚫었나요?‘ 

  ‘......’


  뉴턴은 위대한 물리학자였다. 하지만 평생 자신의 연구결과를 남에게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했고 경쟁적으로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 

  음악계에 바그너 파와 브람스 파의 백년전쟁이 있었듯이, 수학 물리학계에서도 뉴턴 파와 라이프니츠 파의 백년전쟁이 있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경우에는 영국과 독일의 자존심 싸움의 양상까지 갔었는데 논쟁의 내용은 미적분 연구를 먼저 확립했다는 논쟁이었다. 그때 미적분을 만들지 않았으면 수포자의 수가 지금보다는 줄어들지 않았을까?  


  독신으로 생을 마친 뉴턴은 로맨스라고는 하숙집 딸을 잠시 짝사랑했던 것이 전부였다. 우정과 사랑에는 젬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연구실을 나와 혼자의 시간이 되었을 때 인간관계의 결핍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그래서였을까? 뉴턴은 훗날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세상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였고
조약돌이나 조가비를 보면 
한없이 기뻐하는 아이였다.   

  

  위대한 물리학자의 역설적인 동화 같은 표현에 짠한 마음이 느껴진다.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를 한 번 더 감상해야겠다.

https://youtu.be/ygg4ANZjWyA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뉴턴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이런 동심의 세계가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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