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제베 Aug 04. 2019

공허하지 않는 구라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피오 섹슈얼의 매력

  PC에 스팸이 쌓였는지 최근 부팅 속도가 느려졌다. 회사 자료는 서버에 보관 중이고 개인자료는 USB에 백업하여 별도 보관하기에 PC를 시원스레 포맷한다. 포맷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기본 프로그램을 인스톨하고 인터넷뱅킹을 하려는데 USB에서 인터페이스 에러가 뜬다. 아차 싶다. USB 보관 자료를 믿고 PC를 방금 포맷하지 않았던가. 인증이야 다시 등록하면 되지만 최근 메모해 놓은 글들의 소재가 아깝다.

  전자상가 전문가에게 달려가 USB 데이터 복원을 시도한다. 전문가도 복구 불가능이란 판정을 내린다.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오히려 점점 꼬여만 가는 현상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네이버 사전에서는 머피의 법칙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책에서는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으려는 거짓 오류의 심리현상이라고도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느 현상이 맞는 걸까.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이럴 때는 오컴의 면도날을 들이댄다. 머피의 법칙이 이해하기 쉽다.  


  '~의 법칙' 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천명관 소설인 <고래>다. 난 이 소설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키득키득 웃느라 아내에게는 잠시 실성한 사람으로 비치기도 했다. 대신 450여 페이지의 소설을 지루하지 않게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다.  


  천명관의 <고래>에는 40여 가지의 법칙이 등장한다. 사랑의 법칙, 자본의 법칙, 거리의 법칙과 중력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뉴턴의 법칙에다 구애의 법칙, 권태의 법칙, 화류계의 법칙 등등 B급 분위기의 법칙까지 재미있게 정의해 놓았다. 그중의 압권은 역시 ‘구라의 법칙’ 이었다.  


  구라의 법칙을 떠올리면 황석영 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남도 판소리까지 익힌 황석영의 약장수 레퍼토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구라다. 그렇다면 황석영을 남도 무형문화재 구라로써, 다음 주에 개최되는 <2019년 광주 FINA 세계마스터즈 수영 선수권대회 '공식 구라'> 홍보대사로 지정하면 어떨까 싶다.  



  황석영이 소설 <장길산> 연재를 막 시작했을 때다. 선술집에 모인 문학인끼리 서로의 썰을 풀었다. 그중에서 한 젊은이의 구라가 얼마나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지 옆자리 어느 노인이 그 젊은이를 불렀다. 참 재미있게 논다는 칭찬과 함께 술 한 잔을 건네며 묻는다.


  ‘젊은이, 자네 직업이 뭔가?’


  순간, 질문자의 분위기를 파악한 그는 구라답게 태연스러운 대답을 한다.


  ‘예, 저는 약장숩니다.’   


  대답한 젊은이는 소설가 황석영이었고 질문자는 우리나라 세벌식 '공병우 타자기'를 개발한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였다.  


  천명관과 황석영의 ‘구라’를 직접 들어본 적은 없다. 소설에서나마 그들의 구라를 듣고 있을 따름이다. 최근 젊은 구라 문학(?)의 저자 중에는 <베를린 일기>를 쓴 최민석 작가가 있다. 요즘 출근길에 최민석의 네이버 블로그에서 남미 여행의 구라를 재미있게 읽고 있기도 하다.


  황석영이나 천명관이나 최민석의 구라는 들음직하다. 시끄러운 썰을 푸는 듯 하지만 그들의 구라는 쓸데없는 구라가 아니다. 왜일까. 

  그들의 ‘구라’는 공허하지 않다. 재미 못지않게 철학과 지식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피오 섹슈얼의 매력이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허구는 삶을 견디게도 한다던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