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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Aug 15. 2020

울트라 마린과 쪽빛의 매혹

이조백자에 감동하다

시골집 툇마루에서 말복의 오수를 즐겼다. 낭자하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잠이 깼다. 서울 중부는 장맛비가 내리고 있지만, 이곳 남도의 시골은 쾌청한 하늘에 복날의 더위를 토하고 있다. 갈증을 달래려 냉수 한 잔을 마시며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무더위에 아랑곳없이 뜨거운 블랙커피를 마신다. 이열치열이다. 문득 커피잔에 눈길이 간다. 청량감이 느껴지는 울트라 마린의 색상이 무더위를 잊게 한다.  


오수를 즐기고 마시는 커피잔의 청량감에 잠기다


울트라 마린. 내가 좋아하는 색이다.

심리학자의 이야기로는 세계인이 가장 선호하는 색은 파란색이고, 그 색 중에서 가장 고귀한 색채는 중동産 청금석에서 추출하는 울트라 마린이다. 황금보다 비싸고 고귀한 색채여서인지 울트라 마린은 주로 성모 마리아의 옷을 그릴 때 많이 사용하였다고도 한다.


울트라 마린의 색상을 떠올리면 페르메이르를 떠올리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생각한다. 그녀의 머리띠와 진주 귀걸이의 조화는 언제나 나를 편안하고 즐겁게 한다. 머리띠의 매혹이 유혹으로 다가서는 그림이다. 나에겐 울트라 마린의 매력이다.


어느 해 여름, DDP 간송문화전에서 고려청자와 이조백자를 감상한 적이 있었다. 평소 고려청자에서는 여성스러움이, 이조백자에는 한량의 꼰대스러운 느낌을 갖고 있었다. 전자는 박종화의 詩 <청자부>에서, 후자는 조선 한량의 의복에서 느꼈던 선입관이었을지도 모른다.


흐르는 선은 가냘프게도 보여라 고려 청자기.
순결한 모습에 색시처럼 아름다워 나를 유혹 하누나.
......
월탄 박종화 <청자부> 詩에서


울트라 마린의 파격 무늬가 나를 감동시켰다.


그랬던 터라 밋밋한 이미지의 이조백자보다는 섬세한 이미지의 고려청자에 더 애정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조백자의 실물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조백자에 울트라 마린 색상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화룡점정과도 같은 울트라 마린의 파격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은은한 조명에 싸인 이조백자의 아우라에 취해 한동안 감상에 몰입했다. 마치 스탕달 신드롬과도 같은 감동이었다.


울트라 마린과 비슷한 색채인 쪽빛도 좋아한다. 쪽빛은 ‘쪽’이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색이다. 또한 쪽빛 못지않게 비취색도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고려청자 비췻빛이다.


휴식의 독서를 할 때 가끔, 모니터 바탕에 비췻빛의 고려청자 사진을 띄워 놓는다. 이 사진은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허락을 받고 찍어온 전시작품 사진이다. 이 사진은 마음을 차분히 하고 집중력을 갖게 하는 마력이 있다. 물론 쪽빛과 비췻빛의 마력 때문일 것이다.


(모니터 사진)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촬영


거리에 쪽빛 적삼을 입은 여인이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쪽빛에 눈이 간다. 타인이 눈치 채지 않게 색채의 아름다움을 마음 속으로 감상한다. 그리고 상상한다. 쪽빛 적삼을 입은 여인이 비췻빛 청자나 이조 백자를 안고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가 되겠는가, 라는 상상 말이다. 아마 뮈~쳐 버릴지도 모르겠다.


사족으로,

DDP 간송문화전에서 입장 티켓을 끊을 때의 이야기다.

줄지어 선 입장객보다는 그저 모니터만 집중한 담당 여직원이 나를 대충 바라보며 묻는다.

"경로우대 할인인가요?"

"...아뇨???“


그제 서야 나를 뚜렷이 바라보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죄송합니다!" 라고 재차 삼차 외친다.

"괜찮아요. 바쁘면 그럴 수도 있죠."


염색을 하지 않았던 내 머리를 언뜻 보고 꺼낸 실수였을 것이다.


간송문화전 감상을 마치고 전시관을 나서는데 젊은 스탭이 지나간다.

"내 얼굴 사진 한 장 찍어줄래요?"

"자~찍습니다. 웃어주세요"


겉으론 어색하게 웃어 보였지만 속으론,

"짜샤, 지금 내가 웃을 상황이냐!? “


어느 해 여름, 경로우대 할인을 당했던(?) 그때의 사진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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