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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Sep 18. 2020

인생 다 그렇지 뭐

과연 그럴까?

전산기기로 밥벌이는 하지만 직업상 지겨워하는 것도 전산기기다. 근무 중에는 업무의 집중력을 위해서 카톡을 무음으로 해놓는다. 그러다 보니 곧장 답장을 하지 않는다는 오해도 받는다.


몇 해 전, 연락이 뜸하던 초등학교 여자 동창의 카톡이 도착했다. 이심전심이었는지 그날은 무음의 카톡 메시지가 액정에 뜨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바쁘냐? 지나는 길에 차 한 잔 할까 하는데... “


가끔 사무실 근처로 지나는 길에 단정한 모습으로 조용히 차 한 잔하고 가는 초등학교 여자 동창이다. 은둔과 유목의 철학을 지닌 이 친구 또한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다. 커피를 마시던 친구의 입에서 사주를 공부하는 지인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선조들의 한문 저서는 한글로 해석해 놓은 책으로 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중고교 시절 잠깐 한자수업을 받기는 했지만 이는 기초생활한자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정약용의 저서들을 원본으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멍~했던 적이 있었다.


그즈음 동서양 철학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이 매주 일요일에 모여 사서삼경을 강독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 훈장님이 친구의 형이었기에 함께 강독을 시작했다.


그간 서양철학이나 동양철학은 피상적인 기초지식만으로도 사회생활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겼었는 데, 강독을 시작해 보니 좀 더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했다. 특히 한자 실력이 부족했다. 비록 쓰지는 못해도 읽을 줄은 알아야겠기에 강독에 앞서 한자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한자 공부를 해보니 주역에 강한 흥미가 일었다. 그러나 주역이 어디 만만한 학문이던가. 그저 짝사랑하는 여성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수준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 동창에게 주역을 공부한 지인이 있다니 반가울 따름이었다. 곧장 시간 약속을 정하고 며칠 후 주역을 공부했던 지인을 만났다. 지인은 명리학을 공부한 분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주역과 명리학은 별개의 학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날 내가 이해한 명리학은, 미래의 점괘라기보다는 자신이 지닌 운명을 헤아리고 그 운명에 맞게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학문으로 이해를 했다. 내친김에 내 사주도 풀이해 보았다. 나는 마이너리거 운명을 타고났으며 예술적 감성을 지닌 사주라는 것이었다. 명리학 이야기가 끝나 갈 무렵, 친구분이 뭔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선생님, 조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선생님은 水가 강해서 火를 지닌 여성들에게 우유부단하면 절대 안 됩니다. “


네에? 그래요? 그럼 제발 우유부단하고 싶으니 火를 지닌 여성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애원조로 말을 건넨다. 여자 동창과 지인은 당연한 농담으로 여기는 듯 무성의(?)하고 야속한 웃음을 날리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주명리학 자료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나 연인(緣人)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누구를 만났느냐, 어떤 목표를 세웠느냐, 반복적으로 실천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이런 문장들을 볼 때마다 그저 클리셰에 지나지 않는 당연한 말이라고 애써 무신경으로 일관했다. 다만, 가끔씩 홀로 있는 시각에 곱씹어 보기는 했다. 사주보다는 위화의 소설 <인생>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인생 다 그렇지 뭐.

생각 없이 사는 게 제일 속 편해.

과연 그럴까?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나의 전작주의 한 사람인 위화.  <인생>을 읽고 몇 날 며칠을 가슴앓이 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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