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을 위해 사무실을 나와 잠시 벤치에 앉았다. 벤치 등받이에 양팔을 올린 채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본다. 청량한 맑은 하늘에서 시원한 미풍이 얼굴을 스친다. 문득, 산 넘고 바다 건너 하늘까지 건너 간 친구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눈을 감았다.
3년 전, 사반세기를 훌쩍 넘는 관록의 해외 상선 기관장으로 5대양 6대주를 누비고 있는 친구가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지나며 외로운 문자를 보내왔다. 여러 소식을 원하는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습관상 짧은 단문으로 답글을 보냈다. 야속해할 것 같은 친구의 눈빛이 떠올라 ‘산 넘고 바다 건너’ 희망봉에 부는 바람에 곁들여 감상하라며 방미의 <사랑도 추억도> 노래를 링크해 주고 문자를 마쳤다.
친구는 직업 특성상 1~2년에 한 번씩 귀국하여 3개월 정도 휴가를 보내고 출국한다. 워낙 술을 좋아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무드 메이커였다. 나는 맥주를 좋아하지만 친구처럼 두주불사의 음주습관은 아니었기에 절주 하라는 핀잔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2년 전, 모바일 앱 프로그램 개발 차 도쿄에서 장기 체류하고 있을 때였다. 그해 11월쯤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귀국하여 광주 친구들과 술 한잔 나누는 중이라고 했다. 가발을 쓰고 한층 젊게 보이는 사진을 첨부해서 자랑삼아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초장의 답글부터,
“이제는 좀 취미생활을 해보렴. 언제까지 음주 가무로만 시간을 때우려느냐!” 며 돌직구 답글을 날렸다. 이에 친구는 “ㅇㅋ” 라며 나의 추가적인 돌직구를 막고 문자를 끝냈다.
한 달 후, 프로그램 개발을 마치고 나도 1년 만에 귀국을 했다. 광주에 도착해 보니 귀국하면 함께 만나기로 했던 친구가 일정을 앞당겨 출국해 버리고 없었다.
해가 바뀌고 신년이 되었다. 친구는 인도양을 항해 중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에는 늦둥이 아들 학교생활을 걱정하고, 새해에도 건강하자는 안부가 포함되어있었다. 나는 무덤덤한 일반적인 안부로 간단히 답글을 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이 문자가 이승에서 친구의 마지막 문자가 되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아프리카 희망봉을 지나 인도양 모리셔스 근방을 항해하던 친구는 혈압이 악화돼 급사를 했다. 싸늘한 주검으로 광주에 돌아온 친구는 부검을 하고 장례를 치렀다. 영정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간 친구에게 쓴소리를 했던 게 생각나서였다. 죽마고우의 추억보다는 나에겐 후회만이 남는 것 같았다.
나는 친구에게 왜 그렇게 쓴소리를 많이 했을까. 분명 친구를 위한다는 명목이었을 것이다. 근데 누가 누구를 위해 충고한다는 말인가. 나의 행동거지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 그건 내 자신을 위해 내 방식에 맞추려는 이기심이었다. 가버린 친구를 생각하면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사실에 미안함을 지울 수가 없다.
노래를 좋아했던 친구에게 오늘도 방미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희망봉에서 희망의 바람을 맞으며 감상하라고 들려주었던 노래가 이제는 친구의 애가(哀歌)가 되고 말았다. 산 넘고 바다 건너 하늘까지 닿도록 가사를 음미하며 조용히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