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의 슬픈 잔상

생과 사의 순간에서

by 쟝아제베도

점심때 복어탕과 복사시미를 먹었다. 비즈니스 회의가 끝나고 일행 중의 한 명이 복어탕을 제안했기에 선택한 점심 메뉴였다. 두 일행은 정종까지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나는 복어탕의 미나리는 초장에 찍어 맛있게 먹었지만 복어요리만큼은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복어요리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이 있다. 어린 시절에 겪은 복어의 공포 때문이다. 복어의 독에는 청산가리의 10배가 넘는 독성이 있다. 복어 스스로는 독을 만들지 못 하지만, 먹이가 되는 불가사리와 갑각류, 납작벌레 등에서 독을 축척한다. 따라서 이런 먹이를 제외하고 양식한 복어에는 독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복어의 맛은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지만 복어 마니아에겐 훌륭한 요리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복어 맛을 죽음과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맛있다고 했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울릉도 호박엿과 비슷한 맥락의 비유일 것이다. 설마, 소동파는 복어의 독에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서 맛의 비유를 이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실제 복어를 먹고 죽어가는 모습을 무섭고 슬프게 지켜본 어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시골집은 녹동항과 가까운 농촌이지만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던 고향은 나로우주센터 발사대가 있는 나로도다. 지금은 연육이 되었지만 초등학교 시절에는 여객선을 타야만 육지에 나갈 수 있었다. 어업 전진기지인 나로도는 한때 삼치 파시로 유명했다. 어린 시절 부둣가에 나가면 일본 상선이 정박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갓 잡은 싱싱한 삼치를 급속 냉동하여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무역선이었다. 어업이 호황이었던 그때는 마을 토박이 뱃사람보다도 타지의 뱃사람이 더 많이 눈에 띌 정도였다.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친구들과 공터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머리와 어깨가 축 쳐진 사람의 양쪽 팔을 두 사람이 부축한 채 여러 어른들과 서둘러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을 보아하니 동네 사람은 아니고 뱃사람인 듯한 외지인의 얼굴이었다. 복어를 잘못 먹어 식중독에 걸려 온몸의 마비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놀이를 중단하고 그 사람들을 따라갔다.


병원에 도착했다. 섬마을 병원이라 해보았자 당시에는 보건소 정도의 의료시설이었다. 나중에 커서 알게 되었지만 그때 보건소에는 전문의는 없었고 파견 공중보건의가 근무 중이었다. 응급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환자의 몸에는 복어의 독이 많이 퍼졌기에 지금 상태로 응급실에 눕히면 그대로 잠이 들어 사망한다는 어른들의 소리도 들렸다. 복어독이 자연 해독될 때까지 잠이 들지 않도록 계속 걷게 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민간치료법까지 들렸다.


동료 뱃사람들은 식중독 환자를 둘러매고 부둣가를 반복적으로 왕복했다. 중간중간 환자의 빰을 때려가며 “잠들면 죽는다!”를 외쳤다. 환자의 눈은 이미 가물가물 잠기는 상태였지만 그때 환자의 대답이 지금도 내 귓가에 어렴풋이 남아있다.

“나, 안 죽어...”


1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부축한 동료 뱃사람과 환자 모두 지쳐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환자는 동료의 어깨에 걸친 채 잠이 들고 말았다. 저승 가는 길에는 주막도 없다던데, 저녁 어스름과 함께 그는 이승을 떠나 저승길에 접어들고 만 것이다.


망자가 된 그의 주검은 누추한 이불로 덮였다. 향이 살라지고 누군가에 의해 망자를 위한 소주 한 잔이 받쳐졌다. 그 광경을 구경하듯이 철없이 지켜본 어린 마음에서도 나는 한없이 슬펐다. 生과 死의 모습을 함께 지켜보던 친구들도 말이 없었다. 어둑해진 길바닥을 보며 말없이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망자가 궁금했다. 연민이었다. 나 혼자 집을 나와 망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조그마한 천막이 쳐지고 촛불은 켜 있었지만 병풍으로 둘러싸인 망자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무서움이 밀려와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망자에 대한 연민이 한동안 어린 마음을 울적하게 했다.


복어를 접하게 되면 지금도 그때가 생각난다.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까지도 ‘나 안 죽어’라고 처연하게 대답했던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는다. 타향에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그 사람의 신세는 참으로 불쌍했다.

근데 이상하다. 타인의 생명에는 그토록 슬퍼하면서도 내 자신의 생명에는 언제부터인가 달관된 듯한 마음이 생긴다. 왜 그럴까.

냉소적 객기인가?


나로도 부둣가 (2018년)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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