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매 수필
오랜만에 재회한 옛 직장 후배 그리고 주위 분들과 한 잔의 추억을 기울이며 즐거운 담소의 시간을 가졌다. 초저녁 선술집의 분위기는 썰렁하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아 대화를 나누기에 적당한 분위기였다.
그중에는 피아노 레슨을 하는 선생님이 함께 했다. 후배가 지휘하는 성가대의 반주를 맡고 있는 그녀는 반주 중에 실수한 에피소드를 꺼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반주가 성가대에 폐를 끼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며 겸손한 표정도 지어 보였다. 또한 자신의 피아노 반주가 너무 크지 않느냐고 후배 지휘자에게 묻기도 했다.
그 순간 후배는 좌중을 향해, “Am I too loud?”를 외쳤다. 나는 평소의 대화 중에 누군가 영어로 이야기를 하면 쉽게 해석이 되지 않아 농담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하지만 그 순간 후배의 한 마디에는 뭔가의 콘텍스트가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의 설명을 들어보니, ‘내 소리가 너무 크지 않을까?’라는 의미인데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가 마지막 콘서트에서 했던 이야기라고 했다.
'내 소리가 너무 크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와 제럴드 무어의 마지막 콘서트 장면을 찾아보았다. 치열하고 각박한 세상사 속에서 제럴드 무어 같은 분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마르지 않는 향기가 있다. 마치 한인현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청빈함의 향기처럼.
존 케이지의 작품 '4분 33초'가 떠오른다. 4분 33초의 제목은 초(秒)로 변환을 하면 273초가 되는데 –273℃로 절대온도 0을 의미한다고 한다. 절대온도 0은 열역학적으로 분자의 열운동이 정지하는 온도다. 일반인에게 이 작품은 전위적 퍼포먼스로 밖에 여겨지지 않지만, 존 케이지가 피력하려고 했던 ‘침묵’의 시간은 어떤 울림을 갖게 한다.
침묵도 소리이고, 음성도 소리이고, 소음도 소리이다. 타인을 향한 소리도 소리이고, 사회를 향한 소리도 소리이다. 아름다운 멋진 시구도 소리로 표현할 수 있고 할리퀸 로맨스도 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소리라고 다 같은 소리는 아닐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소리. 이런 소리야말로 내가 바라는 소리일 진대, 나는 왜 목소리가 자꾸만 커질까. 가끔은 거의 샤우팅 수준으로. 나도 외쳐 본다.
Am I too lo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