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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Oct 31. 2020

푸른 달에 한 번

할로윈의 블루문

시월의 마지막 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보름달이다. 할로윈 데이의 블루문이기 때문이다. 도심에는 청춘의 할로윈 축제로 뜨겁겠지만 시골집 마당엔 블루문의 달빛 고요만이 가득하다.


지구에서는 한 달에 두 번의 보름달이 뜬다. 계절의 마지막에 뜨는 두 번째 보름달을 블루문(blue moon)이라고 한다는 데, 우리는 일 년에 네 번의 블루문을 볼 수가 있다. 블루문은, 용어에서 느껴지는 달의 색상과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달빛이 푸르스름하게 변할 때는 특별한 경우다. 화산이 폭발하여 발생하는 먼지의 영향으로 독특한 시각효과를 나타낼 때와 같은 경우다. 즉, 일상적이지 않는 드문 경우의 현상인 것이다. 이렇듯 불가능은 아니지만 희소성을 표출하는 것으로도 블루문의 의미로 삼는다.


블루라는 파란색은 원래 희귀한 색이었다. 파란색은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그리고 청바지 등 세계인의 50프로가 사랑하는 색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연에는 파란색이 드물다.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은 빛의 착시에 따른 것이고, 척추동물에서는 2종만이 파란 색소를 가졌을 따름이다. 요즘은 안료의 발달로 흔히 볼 수 있는 색상이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16세기 문학에서 처음 언급되었다는 블루문의 표현이 좋다. ‘푸른 달에 한 번’ 이라는 블루문 귀하고 소중한 의미로 여겨져서다. 오늘 뜨는 블루문은 할로윈과 만나는 날이다. 견우와 직녀는 일 년에 한 번은 만나지만, 할로윈의 블루문은 19년이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푸른 달에 한 번’ 이라는 애틋함은 대상을 보다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는 중의적 문학 표현이 된다.


텃밭의 고흥유자와 블루문이 무척 어울린다.



나의 소중함은 무얼까. 노래방에서 부르는 대중가요처럼 분위기에 따라 수시변동이다. 수구꼴통 유물론자는 아니지만 한때는 소유에서 소중함을 느꼈다.


스무 살 때,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큰누나에게서 테니스 라켓을 입학 선물로 받았다. 당시 7080 세대에겐 하얀 유니폼을 입고 테니스 코트를 누빈다는 것은 신분상승의 착각에 빠질만했다. 그랬기에 책 보다 더 소중하게 테니스 라켓에 애정을 쏟았다.


취직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자본주의라는 전제를 두지 않아도 돈 앞에서 테니스 라켓은 계륵이었다. 어쩌면 계륵보다 못한 채 나의 관심에서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돈 또한 무용지물이었다. 사랑을 얻기 위한 마음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나니 사랑보다 다시 돈의 존재가 우선이었다. 아직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중년의 안정기에 접어드니 이제는 돈보다는 건강이고, 건강보다는 다시 또 사랑이다. 요즘은 예술을 음미하며 느끼게 되는 스스로의 마음이 소중하다. ‘예술은 나를 사랑할 순간을 주더라’는 느낌이 좋아서다.


오늘따라 유난히 별들이 빛난다. 육안으로는 화성, 목성, 토성의 모습이 보인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블루문 곁에는 얼음거인 천왕성이 있고, 목성과 토성 사이엔 명왕성이 위치한다. 한마디로 스타쇼의 밤하늘이지만 나의 소중함과는 거리가 있다. 희소성과 현실과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리라.

 

오늘이 가면 할로윈의 블루문은 19년 후인 2039년에나 바라볼 수 있다. 그때 나의 소중함은 또 무엇으로 바뀌어 있을지가 사뭇 궁금하다. 아니면 테스 형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좌) 화성   (우)토성,목성  [녹동 6시23분 휴대폰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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