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제베 Oct 30. 2020

홀로 침전하는 창가에서

윤동주 - 쉽게 씌어진 詩

조기 퇴근을 하여 시골집에 왔다. 어머니가 차린 조촐한 저녁을 먹고 산책을 다녀오니 어머니는 이미 잠이 들었다. 창가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신다. 책장에서 읽다 만 모리 오가이의 단편소설인 무희(舞姬)를 꺼낸다. 얼마를 읽었을까. 한기가 느껴져 독서를 멈추고 창가에 다가선다. 밤공기가 차가운 것을 보니 가을은 가을이나 보다. 이내 시선은 창 너머 밤하늘을 향한다. 윤동주를 생각한다.


윤동주의 별 하나에는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詩와 어머니가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잠이 들었지만 만월을 기다리는 화성이 달빛과 함께 밤하늘을 빛내고 있다. 하지만 쓸쓸함이 느껴진다. 한때 일본 다다미 방에서 비가 오는 날에 자주 감상했던 윤동주의 詩를 떠올린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6첩 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詩를 적어 볼까
- 중략 -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하략 -

<윤동주 - 쉽게 씌어진 詩>  


미간에 힘을 주어 깊은 생각에 빠진다. 모든 것은 시들어가며 모든 것은 다시 피어난다. 존재의 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는 니체의 영원회귀설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서로의 다름에서 사랑과 전쟁 그리고 행복과 고통이 연속된다. 이런 진부한 반복의 소용돌이에서 나는 지금 무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또한 전력투구는 하고 있는 건가?  


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나는 무얼 바라며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혼자만 쉽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부끄러움이 한기를 더 하는 밤이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골 마당에도 종량제 봉투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