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제베 Nov 13. 2020

13일 밤의 금요일

불길한 마음은 확률에 따른 머피의 법칙

불금이다. 요즘처럼 집콕을 많이 하는 상황에서 불금의 기다림은 예전만 못 하다. 하상욱의 단편시 <불금>처럼 “알고 보면 다들 딱히” 와 같은 분위기다.

      

이번 주는 프로그래밍을 많이 해서일까 피로가 느껴진다. 마음 서둘러 퇴근을 기다리지만 불금의 시간은 더디기만 하다. 시계의 초침을 권태롭게 바라보다 달력으로 시선이 간다.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이다. 불금의 기대감이 불길한 마음으로 전이되는 듯한 느낌이다. 잠시 의자를 뒤로 젖히고 팔베개를 한 채 벽면을 마주한다.     


이 시각 한편에서는 파리 테러가



2015년 11월 13일도 금요일이었다. 그날 나는 파리의 에펠탑 야경에 심취해 있었다. 목가적 풍경 못지않은 도회적 야경의 아름다움에 여행자의 행복을 누렸다. 하지만 그 시각, 파리 시내 여러 곳에서는 이슬람 무장단체가 저지른 파리 테러가 발생하고 있었다. 민간인 130여 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테러였다. 불길한 ‘13일 밤의 금요일’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건이었다.     


그날 나의 일정은 에펠탑에서 저녁 일정을 마치는 것이었다. 곧장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와 잠이 들었기에 다음 날 아침에서야 테러 소식을 알 수 있었다. 무장 테러 단체는 민간인이 운집한 곳을 노렸다고 했다. 에펠탑에 모여든 관광객을 대상으로 테러가 자행될 수도 있었다. 희생된 민간인을 생각하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샹젤리제 인도에 테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화가...




불길하다는 13일 밤의 금요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특히 이날은 서양에서 불길하다고 믿는 미신이다. 아마도 우리가 4자를 싫어하는 것이나 이탈리아가 17자를 싫어하는 것과 같은 미신일 것이다.

     

88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일본으로 직장을 처음 옮겼을 때, 회사 엘리베이터에 4층 버튼이 없는 것을 보고 신기(?)해 한 적이 있었다. 일본도 우리처럼 4자를 싫어한다. 4(四)자 발음과 사(死)자 발음이 ‘시(し)’로 같기 때문인데, 4자는 되도록 ‘욘(よん)’으로 발음한다.     


나는 숫자나 문자에서 불길함을 느끼거나 터부시 하는 대상은 없다. 좋아하는 야구에서도 가장 믿음직한 타자가 4번 아니겠는가. 대신 어린 시절에는 불길하다 못해 무서워하는 것이 있었다. 상여였다. 특히 상여 꽃이 내 몸에 닿기라도 하면 나도 곧 죽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상여소리는 싫지 않았다.

       

국악인 김준호, 손심심 부부의 상여소리를 좋아했다. 상여소리를 좋아한다는 표현은 망자에게 결례가 되겠지만, 구슬픈 상여소리는 왠지 마음을 정숙하게 했다. 서편제 풍의 상여소리는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위로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TV에서 전통문화제 실황중계가 있었는데 상여 나가는 장면이 화면에 나왔다. 상두꾼의 상여소리를 음악 감상하듯이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TV를 바라보던 아버지는 '상여 나가는 것 처음 보냐!' 면서 나에게 버럭 화를 내고 방을 나가셨다. 그때 아버지는 난치병을 앓고 계실 때였다. 순간 아차, 했지만 절망의 모습으로 뒤돌아섰던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해 여름 아버지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북망산으로 떠나고 말았다.     


머피의 법칙이 있다. 뇌피셜이지만 내세관이 없는 나로서는 미신도 어찌 보면 확률에 따른 머피의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타인의 믿음이 아닌 자신의 믿음으로 불길한 마음을 덮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처럼 ‘13일 밤의 금요일’이라는 글감으로 불길한 마음을 덮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퇴근 시간도 1시간 여가 당겨진 느낌이다. 이거야말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지 않겠는가.


아제베의 파리여행 이야기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 있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