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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Jan 13. 2021

선과 초록의 풍경

안드레아 구르스키 <라인강>

요 며칠 하얀 눈과 잿빛 하늘의 풍경만을 보았더니 파랑과 초록 풍경이 그립다. 시베리아, 알래스카, 홋카이도의 설원에 사는 사람들도 긴긴 겨울에는 초록 풍경을 그리워할까?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적응된 하얀 색채에 익숙한 안락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마침 쾌청한 하늘에서 파랑을 느낄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랑의 원색까지는 아니었지만 색상과 빛의 평온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 파랑을 적신 마음과는 달리 머릿속에는 벌써 초록의 봄 풍경이 그려지고 있었다.


초록을 찾아 도록에서 안드레아 구르스키의 <라인강> 사진을 보고 있다. 초록의 색채보다는 선의 느낌이 강하게 인다. 색채의 안온함 보다는 직선이 주는 명확함의 질서가 구획된다. 온갖 잡다한 시선을 제거한 단순함이 주는 질서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질서는 있지만 푸근함이 없다. 초록은 있지만 곡선이 없어서다. 정의감은 지녔지만 융통성이 아쉬운 사람을 보듯이 말이다.


안드레아 구르스키 <라인강>


직선은 디지털로 곡선은 아날로그의 느낌이 든다. 사람 사는 세상은 직선과 곡선,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적절히 섞인 중용의 삶이 좋다. 그렇다고 평균적 중용은 바람직하지 않다. 평균적 중용은 정체성(identity)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함을 지닌 조화의 중용이 이상적이다. 즉, 극우 극좌가 아닌 조화의 중용이야말로 사람 관계를 풍성하게 할 것이다.       


리더의 경우에는 어떨까. 직선은 엄격함을 곡선은 자상함을 느끼게 한다. 근데, 자상함과 엄격함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자상함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대다수가 싫어하는 엄격함은 누가 필요로 할까. 리더의 자상함과 엄격함의 결과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한때 타율 야구를 표방했던 김성근 감독이 있었고, 자율 야구를 표방했던 이광한 감독이 있었다. 김 감독은 직선과 같은 엄격함의 타입이었고, 이 감독은 곡선과 같은 자상함의 타입이었다. 두 감독의 결과는 지휘 기간이 다르고 동일 팀을 동시에 지휘하지 않았기에 상호 비교는 불가능하다. 결과가 좋았을 때는 자율, 타율의 장점을 이야기했고 나빴을 때는 자율, 타율의 단점을 이야기했다. 직선의 엄격함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듯이, 곡선의 자상함이 좋다 나쁘다도 아닌 것이다. 리더에게 직선과 곡선은 감독의 아이덴티티일 따름이다.


위대한 선조들 중에서도 직선과 곡선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다산 정약용은 직선의 디지털과 같은 느낌이 든다. 이에 반해 연암 박지원은 곡선의 아날로그와 같은 느낌이다. 나에게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다산의 목민심서는 읽기가 어렵지만 연암의 열하일기는 읽어지니 말이다.           


초록을 감상하려던 구르스키의 사진에서 직선과 곡선 이야기로 삐딱선을 타고 말았다. <라인강>의 사진은 현대에 들어 가장 비싼 가격인 48억에 팔린 작품이라고 한다. 이는 투기 거품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투기의 거품이건 직선의 아쉬움이건 내 마음이 가는 것은 역시 초록의 색채다. 그저 사진의 색채를 감상하는 느낌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예술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구르스키 <라인강> 작품 참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63138.html


인간의 마음을 가장 평안하게 하는 세 가지의 색과 빛은 초록, 파랑, 하양이라고 한다. 조경이 잘 어우러진 골프장은 언제든 초록(잔디), 파랑(하늘), 하양(공)의 힐링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골프장에 가본 지도 몇 해가 되었다. 올해는 골프장의 색채와 질감을 느낄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벌써 초록의 봄날로 마음 서둘게 한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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