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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Feb 25. 2021

일상의 파격을 위하여

균형 속에서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

새벽 출근길에 아내의 입에서 사뭇 심각한 어조의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코로나의 역풍으로 ㅇㅇ찜질방이 폐업을 한다네요?”     


아내의 취미생활 중의 하나는 동료 간호사들과 찜질방에서 담소를 나누는 것이다. 아예 회원권을 끊어 찜질방을 이용한다. 도심의 변두리에 위치한 단독 건물의 찜질방이 휴식으로는 가성비 최고라고 호평을 했는데, 그 단골 찜질방이 폐업을 하게 된 것이다.      


찜질방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평소 아내에게 좀 더 다양한 취미를 권유하지만, 아직 별다른 취미가 엿보이지 않는다. 아내는 지금도 차멀미를 하기에 여행 나들이도 제한적이고, 고흐의 밀밭만 보아도 술에 취하기에 모임도 많지 않다. 병원 회식을 하면 1차에서 끝내고 2차는 매정하게 끊고 곧장 집으로 온다. 회식의 꽃은 2차이니, 술은 안 마시더라도 분위기 유지를 위해 2차 참석을 강력 권유하지만 우이독경이다. 은퇴를 하여 맞벌이에서 벗어나면 다른 취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파격 없는 일상을 보내는 아내다.      


브런치 매거진을 서핑을 하는데 왓어북 출판사를 운영하는 작가의 '강릉 한달 일기'가 눈에 띄었다. 강릉이라는 제목에서 그곳의 지인과 안목해변이 생각났기에 클릭을 하였다. 강릉 한달 살기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읽다가 중간 사진에서 나의 시선이 멈췄다. 강원도 양양에서 친구들과 첫 서핑을 하였다는 그때의 사진이었다. 서핑 마니아들의 앨범에서 흔히 보는 사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진에는 나의 시선을 끄는 인상적인 포즈가 있었다. 세 친구는 한결같이 정면을 향해 즐거운 표정을 지었지만, 한 친구만은 옆으로 비스듬한 포즈를 취했다. 한쪽 다리를 구부려 서핑보드에 얼굴을 지긋이 맞댄 채 찍은 사진이었다. 세 친구의 포즈는 평범했지만 한 친구의 포즈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서핑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개성을 자연스럽게 돋보이게 하는 사진이었다. 신선한 포즈이자 파격이었다.  


<해당 사진의 브런치>

https://brunch.co.kr/@youjungahn/36



언젠가 그림을 좋아하는 지인과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회에 관한 문자를 나누었다. 그리곤 덕수궁 돌담길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던 중에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덕수궁 돌담길이나 정동길은 가을바람이 부는 날, 바바리 자락을 휘날리며 가겠어!"라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입에서는 소리 없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멋진 낭만을 지닌 친구분의 대답이 나에겐 '생각의 파격'으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명성은 셀럽 이상의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다. 이후의 예술가들은 기가 죽었다. 아무리 개성을 발휘해도 그들의 명성에 가려 자신들의 화풍이 대중에게 어필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그저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 마리에리스모(매너리즘의 어원) 화가들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훗날 이에 대항해서 나타난 사조가 바로크이다. 바로크(baroque)의 분위기는 ‘섬세하고 풍성함 가득’이라는 이미지이다. 그런데 포르투갈 사전적 의미로는 찌그러진 진주라고 한다. 섬세하고 풍성한 화풍에 약간의 파격을 가미했다는 의미로 읽히는데, 바로크라는 명명도 파격이었을까?


그림에 대한 나의 파격은 어느 정도에서 만족을 할까. 마크 로스코의 <무제>나 호안 미로의 <블루> 정도의 파격을 좋아한다. 로스코의 <무제>는 백색 사무실 공간이 진부해질 때, 가끔씩 책상 위 연필꽂이에 세워 놓는다. 빨강의 강한 톤이 뭔가를 움직이게 하는 파격의 느낌이 들어서다. 미로의 <블루>는 로스코 그림과는 반대 분위기다. 전체적으로는 블루이지만 빨강 한 점에 몰입이 된다. 이것도 색상의 파격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좌)마크 로스코 <무제> / (우)호안 미로 <블루>




난(蘭)의 향(香)에 젖은 듯한 아내의 고요함이 나에겐 매력이었다. 은퇴하면 귀도 뚫어 페이 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하고, 그리피스 조이너의 화려한 네일아트를 하고, 이사도라 던컨의 수려한 스카프로 치장한 아내의 파격을 은근히 기대한다. 어느 가을날, 하이힐에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덕수궁 돌담길을 유유히 걷는 아내의 파격을 말이다. 대신 나도 파격의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숙제가 생기지만. 


피천득 수필가는 청자연적의 연꽃을 바라보던 중에, 똑같이 생긴 꽃잎 중에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꼬부라진 연꽃의 모습이 균형 속에서 눈에 거슬리지 않는 신선한 느낌이었나 보다. 이를 파격이라 했고 잔잔한 '수필'의 정의에도 이와 같은 파격을 부여했다.


새삼 코로나 이전의 일상이 그리 나날이다.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을 지금의 일상에 부여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유튜브 제목과 같은 '자극'이 아닌 청자연적 꽃잎과 같은 '파격'을.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아내의 고요함에 파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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