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제베 Feb 27. 2021

까맣게 타 버린 가슴엔 꽃은 피지 않겠지

조관우 <늪>

날이 갈수록 일거리는 떨어지지만 연휴를 맞이하는 전야는 언제나 즐겁다. 다음날 출근 시간을 염려하지 않고 밤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간밤에도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었다.


커튼을 비집고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뜨인다.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외출을 했을 것이다. 별다른 심부름 오더는 남기지 않았고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식탁에 만들어 놓았다. 뜨거운 물의 샤워로 정신을 맑게 하고 상큼한 스킨로션을 바르며 TV를 켠다. 오랜만에 조관우의 노래하는 모습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아점을 잊고 소파에 앉아 조관우의 노래와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더블 MC 가수들과 <늪>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데, 가슴이 먹먹해짐이 느껴진다. 노래 부르는 그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과 방황의 흔적이 엿보이는 안타까움이 일었기에.     



인기 절정에서의 그의 방황과 슬럼프가 아쉬웠다.


조관우의 리메이크곡인 <꽃밭에서>를 좋아했다. 나의 18번까지는 아니지만 노래방에 가면 자주 애창하는 곡이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를 LIVE로 직접 듣고 싶어 그가 노래한다는 미사리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곳에서 <늪>이란 노래를 처음 듣고 그의 묘한 매력에 빠져버렸다. 특히 노래 후반부 스타카토풍의 코러스 부분에서는 전율을 느꼈다. 조관우의 특징은 진성과 가성 사이인 희성의 목소리다. 성인 남성의 목소리에서 어떻게 저런 목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카스트라토도 아닌데 말이다.        


조관우 <늪> 유튜브

https://youtu.be/P01-Bk0iJos     



한때 유럽 교회에서는 여성이 노래하는 것을 금했다. 교회에서는 고음역대의 여성 성가대 합창을 들을 수가 없었다. 소프라노의 부분은 변성기가 오기 전인 소년의 미성으로 대처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성가를 소년들의 목소리로만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카스트라토다. 남자의 성기를 거세하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고음역의 소프라노와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에.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도 카스트라토가 될 뻔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어보면 그는 아버지에 의해 카스트라토가 되기 위해 거세 수술 날짜까지 받아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술 당일 배탈이 나는 바람에 수술을 연기했고, 그 사이 아버지의 생각이 바뀌어 하이든은 카스트라토가 아닌 교향곡의 대가가 되었다.      


근대에 들어서는 카스트라토가 되기 위해 남성을 거세하지 않는다. 카운터 테너가 있어서다. 카운터 테너는 이중 성대를 훈련한 남성이 가성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카운터 테너는 이동규라고 할 수 있다. 혼자 남녀 목소리를 번갈아 내는 그의 성악을 눈을 감고 들으면 마치 두 남녀가 부르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카운터 테너 이동규 <슈베르트 마왕>

https://youtu.be/Nq-ZvHrH6DY               




청춘시절, 나의 신체 콤플렉스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170Cm에 조금 못 미치는 작은 키였고, 또 하나는 가는 목소리였다. 따라서 키가 크고 목소리가 좋은 사람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중고딩 때 나의 스포츠 워너비는 축구의 차범근과 야구의 김재박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TV에서 두 사람의 인터뷰 목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숫기 가득한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아닌 나처럼 가는 목소리였기에.      


작은 키는 결혼을 하고 나서 시나브로 해소되었지만 나의 목소리 콤플렉스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청춘시절만큼은 아니다. 영화배우 안성기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다. 동류의식까지는 아니어도 멋진 남자라고 목소리가 모두 좋은 것이 아니라는 위로였다. 하긴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대화의 질이 반드시 높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번 연휴는 잠시 잊혔던 조관우 <늪>의 허밍이 반복될 것 같다. 센치한 마음으로 맥주도 마실 것 같고.     

까맣게 타 버린 가슴엔 꽃은 피지 않겠지.
꿈이라도 좋겠어. 그댈 느낄 수만 있다면.
ㅠㅠ     

아제베의 음악이야기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파격을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