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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Jun 11. 2021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자꾸만 잊게 되는 것

김지선의 에세이 <우아한 가난의 시대>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자꾸만 잊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김지선의 에세이 <우아한 가난의 시대>에서 인용된 문장이다. 재미있는 대답이 많았다. 가스 중간 밸브를 잠그는 일, 사용한 물감 뚜껑을 잠그는 일,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는 일 등 일상에서 겪게 되는 경우였다. 저자의 경우는 가난하다는 것을 잊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경우는 무엇일까? 나 또한 가난하다는 것을 종종 잊게 되지만 요즘 일상에서 느끼는 것이 있다. 그간 아내를 위해 빨래와 설거지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잊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중딩 때부터 자취를 해왔다. 고딩 때까지는 누나와 함께였다. 빨래와 설거지는 나에게 낯선 행위가 아닌 일상이었기에 결혼을 하면 아내와 함께 빨래와 설거지를 하는 자상한 남편이 되려고 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20여 년이 훨씬 지난 COVID-19 이후에야 겨우 실천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부터 사무실보다 재택근무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스레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요리를 못하는 나로서는 아내의 가사 노동을 세탁과 설거지로 퉁치고 있는 셈이다. 축구에 비유하면 아내는 전방 공격수 스트라이커가 되었고 난 후방 수비수 스위퍼가 되었다.       


세탁과 설거지를 하면서 느껴지는 게 있다. 시작은 힘들지만 끝내고 나서 느끼는 기분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세탁 완료 알람이 울리면 우선 머리가 무겁긴 하다. 세탁기가 있는 뒷 베란다에서 앞 베란다까지 기껏해야 10여 미터밖에 안 되는데도 몸이 곧장 반응하지 않고 미적거려진다. 하지만  세탁물을 건조대에 널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 없다. 손 끝에 풍겨지는 섬유린스 향에서는 성취감 같은 뿌듯함마저 풍긴다. 설거지 또한 비슷한 느낌이라 요즘은 망설임 없이 세탁과 설거지를 한다.      


세탁과 설거지의 어떤 느낌이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일까. 때와 찌꺼기를 깨끗하게 하는 정화의 마음일까? 아내에게 칭찬의 말을 들어서일까?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궁극의 이유는 아닌 것 같았는데, <우아한 가난의 시대>의 다음 문장을 읽고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거지는 명상의 효과가 있다.


라는 문장이었다. 즉, 설거지는 무념무상의 상태에 가깝다는 것이다. 옷가지를 탕탕 펴서 하나하나 건조대에 너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설거지의 명상 효과는 멍 때리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격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명상에 정식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다. ‘수련보다는 지식이 낫고, 지식보다는 명상이 낫고, 명상보다는 포기가 낫다. 포기를 하면 즉시 평화가 온다’라는 말이 있기에 명상은 나의 삶에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명상이 필요할 때면 멍 때리기로 마음을 정화하고 다스리는 정도였다.     


명상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요가다. 올가을 희망퇴직을 앞둔 아내에게 요가에 관심을 가져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평소 말 수가 적고 고요함의 아우라를 지닌 아내의 취향에 맞을 것 같아서였다.      


운동신경이 없는 아내의 취미는 특별히 없다. 운전이 무서워 운전면허 도전은 언감생심이다. 아직도 차멀미를 하기에 원거리 여행도 힘들어 한다. 굳이 취향을 찾는다면 마음 맞는 지인들과 사우나 또는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것이다. 그 외에는 집순이의 취향으로 드라마를 즐겨보는 정도이다.          



유산소 운동보다 리락스 타임이 더 매력적이었던 에어로빅 (1992년)


요가를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아내에게 요가를 제안한 것은 사바사나 자세의 평화를 알기 때문이다. 에어로빅(aerobic)은 우주비행사의 유산소 운동을 위해 만들어졌다. 한때는 여성 전용 운동으로만 여겼었지만 도쿄에서 직장 생활할 때는 주말이면 에어로빅을 즐겼다. 일본에서는 남녀 공히 즐기는 생활체육 같은 분위기였기에 용기를 내어 에어로빅을 시작했던 것이다.      


에어로빅을 시작했던 당초 목적은 유산소 운동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에어로빅의 매력은 유산소 운동이 아니었다. 그 매력은 에어로빅이 끝나가는 마지막 리락스 타임에서 사바사나 자세를 취하는 순간이었다. 가뿐 숨이 수그러들고 맞이하는 무념무상의 순간, 이 순간이 나는 너무 좋았던 것이다. 사족으로 에어로빅 인스트럭터였던 유리코의 느낌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아니면 일감이 줄어서인지 멍 때리기 순간이 많아졌다. 하루하루 일과가 능동적이 아닌 수동적인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래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이 싫지는 않기에 무념무상의 순간은 나를 긍정의 하루로 만든다. 마음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느낌을 만끽하기 때문이리라. 아내도 긴긴 직장생활이 끝나면 무념무상의 평안한 취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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