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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Dec 11. 2020

부모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니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를.

첫눈이 기다려지는 주말 이브다. 이번 휴일에 첫눈이 내린다는 소식이고, 다음 주에는 한파가 닥칠 거라는 기상예보가 곁들여진다. 시골집 어머니를 생각한다. 추위를 피해 광주로 모셔올 생각으로 오전 업무를 마무리한다. 


오후의 햇살이 희뿌옇다. 미세먼지의 영향인가 보다. 한 시간 여를 달려 고흥 읍내에 들어선다. 마트에 들러 찬거리를 찾는데 그물에 담겨 겹겹이 쌓여있는 굴이 눈에 띈다. 삶은 굴에 막걸리 한잔이 생각나 굴 한 뭉탱이를 카트에 담는다. 1kg에 15,000원이다. 


2주 만에 뵙는 어머니의 첫마디는 “밥 먹었느냐” 다. 대답 대신 굴 뭉탱이를 내려놓으니 부엌 뒤편으로 향한다. 굴을 찜통에 넣고 가스레인지에서 간단히 삶으려 했지만 한사코 장작을 피워 큰솥에 삶아야 한단다. 불쏘시개 연기가 피어오르고 땔감 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벌써 익었다는 소리가 들린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먹음직스러운 굴을 가운데 두고 어머니와 단둘이 마주 앉는다. 어머니의 굴껍질 까는 요령이 나보다 낫다. 막걸리 한 잔을 드리니 사양을 한다. 요즘은 막걸리 마시고 나면 어지럽다는 이유에서다.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현상이리라.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 옴을 막걸리 취기로 달랜다.


굴까는 96세 어머니의 요령에서 경험을 배운다


시골집 저녁의 시차는 1~2시간 빠른 느낌이다. 마당의 어둠도 빨리 찾아든다. 어머니를 위해 나로서는 이른 저녁을 먹고 어머니가 담근 유자차를 마시고 TV를 켠다. 곁에서 TV를 보던 어머니는 스르르 잠이 든다. 취침등을 켜드리고 안방을 나와 뒷방 서재에 앉는다. 침묵이 흐른다.


한참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날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가 들린다. 비몽사몽으로 대문 잠그라는 말을 하곤 다시 잠에 빠져 든다.



나만의 시골집 서재


마당엔 적막과 어둠이 가득하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쏴아~ 밀려든다. 조심스레 대문을 잠그려 하지만 21세기 철구조물의 요란한 소음은 온 동네를 깨우는 듯하다. 문득, 경봉 큰스님이 생각난다. 경봉 큰스님이 입적할 무렵, 스님이 보고 싶으면 어찌해야 하냐고 물었던 시자 스님에게 했다는 말.


"야반 삼경에 문빗장을 만져보거라."



독백이 흐른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어머니도 언젠간 북망산으로 떠날 것이다. 그때 시골집 대문을 잠글 때면 어머니의 그리움이 해소될 수 있을까?  

밤하늘을 올려보고 심호흡을 한다. 이럴 땐 보름달이라도 떠있으면 좋으련만. 옛시조인 <벽오동>을 읊는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려터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만 빈 가지에 걸렸에라.


추운 삼동(三冬)의 보름달은 아무래도 명월(明月)이라 부르는 게 운치가 있다. 황진이 별호가 명월이라서인지 애가 타는 듯한 애틋함이 밀려온다. 벽오동의 꽃말은 ‘사모’, ‘그리움’ 이라던데, 긴긴 겨울밤에 봉황을 기다리는 황진이의 심정을 헤아리면 말이다.

 

시골집은 저녁을 먹고나면 곧장 야반 삼경의 분위기다.


겨울밤이 가장 긴 동지는 아직 멀었다. 시골집의 겨울밤이 길기는 해도 밤의 운치는 역시 야삼경이다. 지금은 겨우 초경에서 이경으로 가는 시각인데 벌써 야삼경의 분위기다. 잠이 든 어머니를 생각하며 소월의 詩 <부모>를 허밍으로 흘린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이렇게 어머니와 시골집에서 겨울밤을 함께 지새우는 것도 유한한 미래겠지? 

우리의 삶은 유한하니까.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양희은이 리메이크한 <부모>  유튜브 듣기

https://youtu.be/Hxmy5kKJrGQ


김소월의 증손녀 김상은 성악가가 부른 <부모> 유튜브

https://youtu.be/htxeMpClDB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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