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제베 Dec 12. 2020

나는 미식가가 부럽다

부끄러운 편식

시골집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주말을 보낼 때, 가장 부자유스러운 순간은 음식을 먹을 때다. 어머니에게 내는 짜증도 거의 음식에 관한 짜증이다.


시골집에 오면 밤늦게 잠이 드는 편이다. 일상의 업무가 끝나고, 독서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빔프로젝트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새벽녘에 잠이 드는 경우가 많다. 모처럼 늦잠을 자려하지만 주변의 소음(?)에 단잠이 깬다. 소음의 주범은 닭이 홰 치는 소리가 아닌 어머니가 새벽부터 아침 준비하는 소리다. 


어머니는 나에게 많은 것을 먹이려고 한다. 자식의 배를 불리려는 부모의 마음이다. 소식(小食) 체질인 내가 늦잠을 자고 싶어 하는 것을 알지만 한사코 나를 깨운다. 아침 먹고 다시 잠을 자라는 것이다. 먼저 드시라고 하면 내가 일어날 때까지 식사를 하지 않고 기다린다. 할 수 없이 비몽사몽 세면을 하고 아침상을 마주하지만 밥맛이 생길 리 없다.


나는 미식가가 부럽다. 남자로서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아직도 초딩 입맛이다. 지독한 편식에다 김치만 먹어도 콧잔등에 땀이 배고, 육개장이나 제육볶음 같은 매운 음식을 먹으면 비 오듯이 얼굴에 땀이 흐른다. 음식에 대한 비위도 상당히 약하다. 


마시는 것 중에 좋아하는 것은 맥주와 커피다. 그렇다고 혀끝에 쫙쫙 달라붙는다는 맥주 맛이라든지, 커피의 바디감이라는 표현이 과연 무슨 맛의 느낌을 이야기하는지 잘 모르겠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나에게도 분명히 있다. 식도락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 맛집에 관심을 가져보지만, 결국 배가 고프지 않은 대상 정도로 음식을 대한다. 출장 중에 허기를 느꼈을 때, 김밥과 라면의 포만감으로도 식도락을 느끼기도 하고. 



시골집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중의 하나는 역시 라면이다. 오늘도 오후 햇살을 받으며 마루에 앉아 라면을 먹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가 한 마디 하신다.

좋은 음식 놔두고 (빈티 나게) 라면이나 먹다니(쯧쯧...)

 

어머니는 아직도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을 '돈 많이 벌어 호의호식하는 것' 으로 여기고 있다. 그 성공(?)을 눈으로 보고 싶어 하는 데, 점심을 라면으로 먹고 있는 내가 안쓰러운 모양이다.

 

“타인의 눈에는 호의호식 생활이 아닐지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못 먹을 정도로 비참하지는 안잖아요?”  


라고 애써 태연을 가장한 대답을 하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제 그런 기대는 내려놓고, 

지금 이루어놓은 상황에서 배고프지 않게 그냥 편안~히 삽시다.” 


반은 나의 진심이고, 반은 죄송스러운 면피용 대답을 어머니는 오늘도 속상해하는 모습이다. 아, 음식을 푸짐하게 잘 먹는 것도 성공의 하나가 될 것인데,

나는 오늘도 미식가가 부러울 따름이다.


나는 미식가가 부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