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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Jan 15. 2021

마음

시월드의 현실

[커버사진] 시골집 마당에서 바라다본 저녁 무렵


광주에서 시골집까지 120여 Km. 자동차로 1시간 20분을 달려 4차선 도로에서 2차선 시골집 동네로 들어선다. 낳고 자란 곳이 아닌 부모님의 고향이라서인지 내게는 고향의 느낌이 없다. 그래도 마음의 안식이 느껴지는 시골 동네다. 차창을 열어 폐부 깊숙이 공기를 마신다. 시골 특유의 공기는 언제나 신선하다.      


시골집에 내려갈 때는 하루 전날 어머니께 기별을 한다. 그러나 도착 예정 시간은 알리지 않는다. 출발이 늦거나 사정이 생겨 예정 시간보다 도착이 늦어지면 휴대폰에 불이 나기 때문이다.     


오후 늦게 도착한다는 기별을 해서인지 시골집 대문이 닫혀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차를 주차시킨다. 최근 청력이 떨어져서인지 아직 어머니의 인기척이 없다. 대신 두 마리의 길고양이가 나를 반긴다. 2주 만에 보는데 제법 덩치가 커졌다. 시골집에서 무얼 먹고 컸을까.     


길고양이가 나를 반긴다


마루 문을 열자 ‘문이 열렸습니다’라는 음성 메시지가 나온다. 군청에서 설치한 노인복지시설의 장치다. 하루가 시작되면, 최초로 문이 열리는 시각과 최종으로 문이 닫히는 시각이 온라인 네트워크망으로 실시간 모니터링된다. 시골 노인들의 고독사에 대처하는 장치다.      


드렁크를 열어 아내가 만들어준 반찬과 일용품을 마루에 내려놓는다. 그제 서야 어머니가 안방 문을 열고 나를 반긴다.

‘밥 먹었느냐?’

어머니 아니, 우리 세대 부모들의 한결같은 반가움의 인사다.      


어머니께서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광주서 사온 고양이 먹이를 뜯어 먹이통에 부어 넣는다. 아직 경계심이 남아 있어서인지 한 마리만이 먼저 먹이통에 다가선다. 잠시 후엔, 두 마리의 새까지 날아들어 먹이를 먹는다. 마루에 걸터앉아 흐뭇한 마음으로 이름 모를 새와 고양이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데 어머니가 마루로 나온다. 식사가 차려졌나 보다.     

고양이 먹이를 본 어머니는 에미보다 동물 밥을 먼저 챙기네? 하고 속으로 서운함을 가질 것이다. 그 서운함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선 되도록 어머니 안 볼 때 먹이를 줘야겠다.         



(좌)녹동항 / (우)고흥천문대에서 바라본 녹동항


시골집에 오면 어머니와 지내는 것 외에도 몇 가지 목적이 있다.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인 읍내를 산책하는 것이다. 건너편 소록도가 바라보이는 녹동항을 둘러보며 바람을 쐬고, 돌아오는 길에는 싱싱한 회를 떠서 온다. 생선의 건어 비린내를 싫어하지만 사시미는 좋아한다. 한마디로 사시미 킬러다.     


요즘은 거리두기 일환으로 녹동항에 가는 것을 자제한다. 동네 산책도 여의치 않다. 얼마 전 어머니께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서다. 아들이 자주 시골집에 오는 것 같다며, 어머니가 옆집에 놀러 오는 것을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내더란다. 코로나 전파를 염려해서일 것이다.      



어둑해져 인적이 드문 저녁이 되어서야 대문을 나선다. 아버지 산소가 있는 저수지까지 산책을 간다. 저수지 옆 현대병원에서 자판기 커피도 마시고 20여 분의 산책을 마친다. 어머니는 안방에서 불을 끈 채 TV를 열심히 보고 계신다. 잠시 후면 그대로 잠이 들 것이다.      


세면을 위해 보일러 온수를 켠다. 아마도 보일러 위에 누워있던 두 길냥이가 깜짝 놀라 눈을 뜰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보일러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눈을 감을 것이고.         


뒷방 서재로 간다. 아차,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를 샀지만 광주에 놓고 왔다. 할 수 없이 eBook으로 김하나의 <말하기를 말하기>를 읽는다. 김하나 작가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을 재미 읽어 기억하는 작가인데, 이번 글은 약간 딱딱한 느낌이 든다. 잠시 읽기를 멈춘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들고 안방 문을 열어본다. 어머니는 예상대로 TV를 켠 채 잠이 들었다. TV를 끄려다 말고 잠이 든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본다. 많이 늙으셨다.    


어머니는 2남 5녀를 두었다. 큰 누님이 44세에, 둘째 매형은 49세에 각각 북망산으로 떠났다. 맏딸 역할을 하던 둘째 누나가 졸지에 홀로 되었다. 얼마 후, 형님의 외아들인 장손마저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에 약관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어머니 가슴에 묻어 둔 아픔이다.        


결혼 후, 차남인 내가 어머니를 모신다. 어머니는 아버지 제사 때만 순천에 있는 형님 집에 간다. 결혼 초기, 3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인 아내를 대신해 어머니가 우리 두 아이를 키웠다. 두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시골집에 자주 내려갔다. 나이가 들수록 시골집에 머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귀향 본능일 것이다.       


아내는 자의 반 타의 반 시어머니를 20여 년 모시고 살아온 셈이다. 아내는 시골집에 자주 내려오는 편은 아니다. 명절과 특별한 날에만 함께 시골에 온다. 나 홀로 시골집에 오는 것은 아내에게 온전한 휴식을 주려는 나의 의도다. 어머니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속으로는 서운해하실 것이다.      


아내에게, 광주에서는 시어머니를 모시게 하지만, 굳이 시골 생활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게 할 수는 없었다. 결코 정통 유교적인 효(孝)는 아니다. 하지만 ‘따로 또 같이’의 이런 생활이 우리 가족이 평화롭게 롱런하는 현실이라 생각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는 하지만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가족에도 존재한다. 좀더 오버하면 세상은 날로 삭막한 분위기가 되어 간다. 이는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가 되어 가는 현상이다. 인정해야 한다. '라떼의 경험'이 아닌 앞으로의 지혜를 고민해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정(情)만을 생각했을 때는 인간이 미워지는, 쉽지 않는 인생살이다. 그래서 ‘성공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고양이 먹이를 창고에 두었는데,  고양이를 더 챙긴다고 서운해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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