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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Dec 26. 2020

와인을 마시며 와인하우스를 생각하다

I go back to us. I go back to black.

[커버 사진] 9월의 사랑과 만날 때까지


언젠가부터 잠은 다음 날에 자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밤 시간을 즐기는 나로서는 자정이 지난 2시에 잠이 들기 때문이다. 나 홀로 깨어있는 이 시간의 사랑스러운 친구는 책과 음악과 커피 그리고 맥주다.     


가끔, 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집중이 안 될 때가 있다. 이때는 영화를 본다. 가족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음량을 줄이고 자막이 있는 외화를 주로 본다.


나가사와 마사미의 <깨끗하고 연약한> 영화를 보는 날이었다. 와인을 앞에 두고 청춘 남녀가 마주하는 장면이 유독 눈에 띄었다. 평소 같으면 와인잔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는데, 그날은 맥주 마니아인 나에게 ‘나에게도 관심을 주세요’라는 와인의 구애가 들리는 듯했다.     



맥주 마니아인 나에게 와인을 마시게 한 영화 <깨끗하고 연약한>



마침 작년에 선물로 받은 와인세트가 생각났다. 두 병 중 한 병은 딸아이가 가져갔고, 한 병은 찬장 어딘가에 놓고서 지금껏 잊고 지냈다.

     

서툴게 와인 코르크 마개를 따서 와인잔에 따른다. 맥주와는 다르게 거품 대신 스파클링 와인과 같은 거품 소리가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어색하게 와인잔을 들어 입술로 가져가는데, 예이츠의 詩 <술의 노래> 한 구절이 읊어진다.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이츠는 와인잔을 입에 대며 우리의 삶에서 알아야 할 진실은 줄이라고 읊었지만, 나는 단맛 외에 당장 느껴지는 게 없다. 혹시 샴페인가 싶어 상표를 보니 분명 와인이라고 쓰여있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인 것 같아 다시 보니 일반 맥주보다 높은 6%다. 아무튼 알코올에서 단맛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술맛의 기분을 느낄 수 없다. 대신 손에 쥔 와인의 색깔이 마음에 들어 한참을 바라보는데 와인과 이름이 비슷한 뮤지션이 떠오른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문화적 데카당이 넘쳐났던 19세기에는 결핵으로 생을 마치는 것이 마치 무용담이 된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천재는 27세에 생을 마친다는 Members of the '27club' 이 생겨났다. 그래미상 5관왕의 영예를 안은 와인하우스도 이 클럽에 가입이 되는 비운의 뮤지션이었다.     


내가 와인하우스를 TV를 통해 처음 본 것은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때였다. 우연히 심야에 TV를 켰더니, 팝페라 가수인 키메라 분장을 연상케 하는 여자 가수와 기타맨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세시맨의 어코스틱 기타 연주가 하도 출중해서 노래보다는 연주에만 몰입을 했다. 당시에는 일본어도 서툴렀기에 방송 멘트로서는 그녀가 누군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알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에이미 와인하우스라는 이름과 <You know I'm no good>이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이후 자연스레 와인하우스의 생애를 알게 되었고, 그 간에 썼던 글에서도 여러 번 인용한 디바이기도했다.          


와인하우스 <You know I'm no good> 유튜브

https://youtu.be/3QDDzaY1LtU


와인하우스의 생애는 나의 정서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를 자주 찾게 되었다. 그녀의 음악성보다는 그녀의 광기를 이해할 수 있어서였다. 아니다, 그녀는 나의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는 아바타의 일종으로 나에게 일탈의 대리 만족 아이콘이었기에.      


와인하우스 노래 중에 <You know I'm no good> 와 <Back to black> 좋아한다. 전자는 흥겨운 기분에서 찾게 되고, 후자는 자기 연민에 빠졌을 때 찾게 되는 음악이다. 두 곡 모두 일반의 정서로는 전혀 감흥없는 가사로 작사가 되었다. 나의 취향이 전혀 아니다. 특히 <Back to black>은 우리나라에서는 퇴폐적 가사라고 금지가 되었던 노래였다. 지금은 해금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는 도덕과 윤리적 잣대를 내려놓고 감상을 한다.     



오늘은 <Back to black>이 듣고 싶은 날이다. 크리스마스와 송년회 등 파티가 많은 개츠비의 계절에 집콕을 해야하니 말이다.


Back to black.

이 노래 또한 처음 들었을 때는 와인하우스의 최고 히트곡이라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평범한 멜로디와 너무 자극적인 가사였기에.


<back to black>은 전 남편인 블레이크를 못 잊어 부르는 노래로 알려졌다. 가끔은 와인하우스가 black을 블레이크로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는 나쁜 남자의 느낌이 강한 블레이크를 그리워하는 그녀에게 의문이 생겼다.      


왜, 와인하우스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떠난 블레이크를 잊지 못할까.

왜, 와인하우스는 나쁜 남자에게 이끌리는 걸까.      


아무튼 나는 이 노래를 좋아한다. 좋아하게 된 계기는 후렴구에 필이 꽂혀서였다. 누군가를 원망하면서도 애틋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 가사가 나의 미래이기도 했다.      

You go back to her and I go back to us.

You go back to her and I go back to black.     


우선은 “I go back to~” 멜로디가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마치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사 중에 “돌~아~와~요~" 멜로디가 일본인의 취향을 저격했듯이.     


다음으로는 중독성이 강한 I go back to~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음미하다 보니 us와 black이 함의하는 느낌이 좋았다. 1차원적으로 와인하우스는 us와 black를 블레이크로 치환하여 부를 수도 있겠지만, 2차원적으로는 미래, 종말, 고통, 고통 끝, 정화 등으로 내 자신의 바람을 노래할 수가 있다.


비통은 모든 감정의 정화를 실현한다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의 본질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와인하우스 <Back to black> 유튜브

https://youtu.be/s6Hr8yHGHPs



에이미 와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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