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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Aug 17. 2021

소록도의 천사들

시골집의 오후도 열풍에 휩싸였다. 나무 그늘에 앉아 열심히 부채질을 하지만 이마의 땀방울은 가실 줄 모른다. 평상에서 즐기 오수도 포기해야 할 판이다.

      

자동차 에어컨을 켜고 읍내를 향한다. 냉방이 잘 된 마트에서 잠시 더위를 잊은 채 생필품을 구입하고 나니 오후의 일과가 끝나는 느낌이다. 시골집으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쉬운 시간. 운전석에 앉아 녹동항을 무심코 바라보는데 저 멀리 아픔을 간직한 섬 소록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절망의 아픔도, 가족과의 이별도, 때로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별리도 무심한 운명과 신앙에 의지했던 소록도. 이제는 고립의 섬 소록도에도 현대화의 손길이 미쳐 연육교가 세워졌다. 시골집에서 20분이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다. 그곳으로 승용차를 돌린다.


소록도


한하운의 ‘보리피리’ 詩畵가 걸린 커피숍에 들어선다. 한센병 시인이라 불리었던 한하운 시인. 소록도에 잠시 수용되었던 때, 그는 이 무더운 여름에 아픈 마음을 어찌 달랬을까. 가을이 오고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되면 '보리피리 불며 피닐리리 꽃 청산 그리워' 라고 스스로 자신의 詩를 읊조렸을까?


보리피리 휴게소를 나와 영화 <동주>를 촬영했다는 푸른 송정 사이로 산책을 나선다. 마을엔 긴 침묵의 평온함이 감돌고 있다. 베고니아 화분도 놓이지 못하는 우체국 계단에서 잠시 두 수녀님을 생각다.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님과 마가레트 피사레크 수녀님을.



소록도에 들어서면 보이는 마을


43년간 이곳에서 한센人을 돌보았던 두 수녀님은 2005년 11월, 아무도 모르게 출국 준비를 하고 편지 한 장 남겨놓고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고 한다. 자신들도 할머니가 되었던 것이다. 평생 남을 보살피던 삶에서 이제는 남의 의지를 받게 되는 것이 두 수녀님에게는 마음 무거운 일이었나 보다.


2016년.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두 수녀님 중에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님이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방문을 했다. 그러나 마가레트 피사레크 수녀님은 치매를 앓고 있기에 방문이 힘들었다는 소식은 마음 시리게 했다.


그 시린 마음 다른 한켠에는 중학시절 알게 된 어느 누나를 떠올리게 했다. 나에게 이성의 설렘과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통해 클래식의 관심을 갖게 해 주었던 누나였다. 평소 이웃의 사랑과 봉사를 강조했던 누나는 간호사가 되었고, 후일 수녀가 되어 소록도병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곳에 오면 가끔 수녀복을 입은 그 누나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지금은 어느 성당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어느덧 따가운 햇살이 설핏해졌다. 서서히 발길을 되돌릴까 보다. 푸른 송정 사이로 제법 훈풍이 불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바다의 윤슬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소록도의 소나무 길. 입구엔 한때 한센인과 가족이 바라보기만 했던 아픈 만남의 장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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