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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Dec 02. 2021

어머니의 활력 나의 은둔

시골집 이방인의 마음

어머니와 함께 한 달만에 시골집에 왔다. 습기 머금은 공과금 우편물은 대문에 꽂혀있고 퇴색된 낙엽은 쓰레기 되어 마당 구석구석에 쌓여있다. 인적이 끊겼던 마당엔 길고양이 조차 보이질 않는다.

      

가을걷이를 마친 어머니는 그동안 서울 여동생 집에 머물렀다. 외손자 결혼식도 있었기에 겸사겸사 시골을 떠나 있다가 지난 주말 결혼식이 끝나고 광주로 오셨다. 백신 3차 접종이 시골집 인근 병원으로 예약되었기에 한 달 여 만에 시골집으로 온 것이다. 시골집에 오면 어머니는 활동반경이 넓어지지만 나는 은둔 생활이 시작된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나는 서재에서 말이다.     


어머니의 활동반경이란 마당과 조그만 텃밭에 불과 하지만 의외로 할 일이 많다. 때론 노동에 가까운 밭일이지만 어머니에겐 활력과 의욕을 갖게 한다. 에너지의 보고(寶庫)인 텃밭에서 사계절 내내 여러 채소가 자라고 수확된다. 지금은 유자와 더불어 고흥의 특산물인 마늘이 자라고 있다. 마당 한쪽에는 상추와 배추가 자라고 있는데 배추는 조만간 김장 때 일부 쓰일 것이다.     



어머니의 에너지 원천인 채소 가꾸기


이에 반해 나는 시골집에 오면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이다. 이곳 시골집은 아버지의 고향이기에 내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나를 아는 척하지 않는다. 아버지 이름을 대야만 겨우 나의 존재를 짐작할 뿐이다. 따라서 생필품을 사기 위해 읍내로 나가는 것 외에는 대문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 서재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다.     



어머니의 백신 접종을 위해 외출을 준비를 한다. 마당 건너편에 보이는 병원까지는 걸어서 10여분 거리지만 어머니를 위해 자동차로 이동을 한다. 여러 동네 어르신들이 먼저 도착해 접종 대기를 하고 있다. 거의가 할머니들이고 할아버지는 가끔 눈에 띌 정도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높아진 데는 장수 할머니들의 건강이 한몫했다는 느낌이 든다.       


3차 백신 접종


접종 대기실은 마치 시골 버스 대합실과 같은 풍경이다.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왁자지껄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간호사의 호출 음성이 높아진다. 할머니들이 많아서인지 유독 <덕~>, <~례>, <~자> 이름이 많이 들린다. 아마도 德, 禮, 子의 한자를 쓰고 있지 않을까 싶다.     



1,2차 접종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3차 접종 후에도 어머니의 접종 상태는 양호하다. 휴식을 취하라고 했더니 30여 분 누워 있다가 결국 마당으로 나간다. 어머니가 잠든 사이 유자를 따려고 했던 내 계획이 무산되는 느낌이다.      


텃밭에는 작년까지 네 그루의 유자나무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 세 그루가 죽고 한 그루에만 유자가 열렸다. 유자나무가 죽는 데는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문제 삼지 않고 베어 버렸다. 유자 가꾸는 어머니의 노동을 줄이기 위한 속셈이었다.


오후에 어머니와 함께 유자를 따기 시작했다. 내가 유자 따는 요령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로서는 나 홀로 작업하는 것을 가만두지 않았다. 맨손으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는 내 손에는 가시에 찔린 핏자국이 선명하다. 이를 본 어머니의 표정에는 애간장이 탄다. 드디어 두 상자의 유자가 수확되었다. 생각보다 많이 수확되었는데 집안 가족 모두가 마실 유자차 만들기에 충분한 양이다.       



어머니와 유자 따기


마당에 앉아 수확된 유자를 다듬는데 초등학교 은사님이 생각났다. 은사님도 유자농장을 가지고 있고 한때 홈페이지 판매도 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다.

      

<고흥유자>가 이곳의 특산물이 된 데에는 고흥만의 바닷바람 영향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유자는 냉해에 약하고 의외로 많은 비료를 필요로 한다. 비료 없이 키운 자연산 유자는 때깔이 좋지 않다. 또한 유자는 가시가 많기에 거센 해풍에 서로 부딪히면 껍질에 상처가 많이 생긴다. 그렇기에 온라인상의 유자 판매자는 주문자에게 유자 때깔 때문에 많은 컴플레인을 받는다고 한다. 이럴 때 은사님은 진도아리랑 이야기하며 시원스레 컴플레인을 해결했는데, 이 비유가 너무 멋져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탱자는 고와도 발길 밑에서 놀고
유자는 얽어도 선비 손에서 논다.


정리된 유자를 상자에 넣고 은사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올 유자 수확을 여쭈었더니 별 재미를 못 보았다는 다소 쓸쓸한 목소리였다. 원인은 올 초 고흥 일대에 있었던 냉해였다고 한다. 아, 그래서 우리 텃밭의 유자 세 그루도 죽었던 모양이다. 유자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코로나가 풀리면, 은사님의 따님이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커피를 마시자는 제안을 하며 통화를 마쳤다.        


유자 따느라 흘렸던 땀이 마르니 추위가 느껴진다. 뜨거운 커피 한잔이 생각나 자리에서 일어서는 데 다리에 힘이 빠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사다리에 의지하느라 발에 가중된 힘의 피로겠지만, 흐린 가을 하늘의 잿빛 음성으로 느껴졌던 은사님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유자수확이 끝난 마당에 앉아


그러고 보니 마당에 있으면 어디선가 찾아들던 길고양이가 보이질 않는다. 빈 시골집에서 지금은 어디서 먹이를 찾고 있을까. 휑한 마음에 까닭 모를 쓸쓸함이 마음 한켠으로 스며든다. 훗날 어머니마저 안 계실 때는 어떤 적적함이 들까. 어머니와 마주하며 믹스 커피를 마셔야겠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믹스 커피 타임이 끝나고 수육에 막걸리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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