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갑작스러운 한파가 시골집에도 들이닥치고 있다. 덜컹거리는 대문 소리와 창문으로 스며드는 외풍이 마음마저 스산하게 한다. 혼술이 나를 부른다.
‘가난한 이름에게’ 라는 詩句처럼 가난한 이름의 고독이 아니더라도, 이가 시린 겨울밤이 아니더라도 노상 술을 마시는 남자들이 있다. 그들의 대화는 뫼비우스 띠를 돌고 돌지만 삼류 철학의 거대 담론은 결론이 나질 않는 법. 날짜 변경선을 지나는 자정의 시각을 보고서야 마지막 건배 잔을 들고서 의기투합을 한다. ‘인생은 독고다이!’
그리고선 날짜 차수변경을 하고 다시 2차의 술자리를 찾아간다. 물론 나의 30대 시절의 술자리 분위기였다.
평소 술좌석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시작은 있고 끝이 애매한 모임에서는 30대와는 다르게 소리 없이 뒤돌아 나오는 경우가 있다. 휴대폰 전원을 끄고 네온사인에 부조된 허황한 거리를 걷노라면 비난의 화살이 날아드는 것이 느껴진다. 술좌석의 마지막 의리를 지키지 못한 나의 행태가 어찌 정당화될 수 있으랴.
그러나 내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때 분위기 반전을 위해 부르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이 아름다운 박선주의 ‘귀로’이다. 언젠가부터는 나얼이 리메이크한 ‘귀로’의 흐릿한 영상을 상상하며 부르기도 한다. 나얼의 호소력 있는 고음이 매력이기에.
적막하다. 이가 시린 겨울밤은 아니지만 노상 술을 마시는 게 되는 주당의 핑계로 혼술을 해야겠다. 취기를 벗 삼아 나얼의 버전으로 <귀로>나 흉내 내어볼까? 부르는 즐거움 자뻑의 즐거움으로 노래를 부른다. 혹시 내 노래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듣는 괴로움도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