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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쟝아제베도 Sep 28. 2021

가을밤의 야상곡 이야기

가뭇 거리는 가로등 아래로 보도블록의 불빛이 반짝인다. 초저녁에 소리 없이 가을비가 다녀갔었나 보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는데 가을밤의 정취가 나의 갬성을 자극한다. 야상곡의 선율이 허밍으로 흐른다. 바야흐로 클래식의 계절이다.      


세레나데의 운치는 교교한 달빛이 흐르는 여름밤의 창가에서, 야상곡의 운치는 풀벌레가 애연스럽게 우는 가을밤의 창가에서 어울리는 음악이다. 그래서일까, 전통적으로 세레나데는 9시에 연주되고 야상곡은 11시에 연주되었다고도 한다.      


목가적 풍경이 아닌 도회적 풍경에서는 세레나데와 야상곡의 분위기를 자아내기엔 아쉬움이 크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로만 따진다면 차라리 쇤베르크의 야상곡인 <정화된 밤>이 어울릴 듯하다. 하지만 그의 아방가르드한 음악은 무척이나 어렵다. 12음을 평등하게 사랑했던 그의 음악보다는 그저 <정화된 밤>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상상하는 게 나에겐 더 현실적인 감상법이다. 음악보다는 제목이 아름다워 기억하는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나오는 합창곡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의 제목처럼 말이다.     


야상곡은 가을밤의 정취를 커피 한 잔과 친구 할 수 있고, 캔맥주의 취기를 자기 연민으로 느끼게 하는 피아노곡이다. 쇼팽의 야상곡은 시작부가 좋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작부 3분 정도 듣기를 반복한다. 마치 빈센트 반 고흐를 팝으로 부른 돈 맥클린의 <빈센트>를 들을 때와 같다. 어코스틱 기타와 동시에 Starry starry night 가사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쇼팽의 야상곡이나 빈센트를 감상할 때에는 오디오 play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야상곡을 가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와 착각할 때가 많다. 쇼팽이 안경만 썼다면 슈베르트와 닮았고 겨울나그네 또한 서두부의 분위기가 야상곡과 비슷해서일 것이다. 두 곡 모두 가을 낙엽이 쓸쓸히 흩어져 날리는 가을에 어울리는 곡이기도 하고.      


야상곡은 결혼 전 총각시절에 도쿄에서 많이 들었던 음악이었다. 일본의 5평 다다미 방에서 <아끼아지>라는 맥주를 마실 때 자주 감상을 했다. ‘아끼아지’란 맥주 이름은 우리나라 말로 가을의 맛(秋味)이라는 의미이기에 야상곡을 감상하기에 무척 어울리는 맥주였다. 지금도 가을이 되면 판매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야상곡을 생각하면 반드시 함께 떠오르는 맥주다.      



가을이 되면 한정판으로 판매되었던 아까아지 맥주


문득 그 시절이 그립다. 덧없는 삶의 허무가 차라리 위로가 되었던 그 시절. '나의 열정 나의 고독, 절망에 묻고'라는 문장을 개인수첩이든 업무수첩이든 눈에 띄는 표지마다 적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 홀로 유난을 떨었던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자기 연민적 언어만이 나의 비통을 정화할 수 있었다. 그 배경엔 클래식이란 BGM이 있었고, 클래식의 위안은 타국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지난 세월, 내 삶의 울타리를 지켜준 것은 문학과 그림 그리고 음악이었다. 나의 소중한 이 친구들에게 맥주가 빠질 수 없다. 지금 냉장고에 맥주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제베의 음악이야기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부르크 뮐러의 첼로와 기타를 위한 야상곡

https://youtu.be/RyU5bkL_l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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