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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쟝아제베도 Jan 09. 2021

쌓인 눈의 단상 둘

푸~욱 푸~욱 눈은 쌓이고

1. 안톤 마우베 <북구 풍경>


올 겨울 들어 광주에도 많은 눈이 내렸다. 겨울다운 풍경이라는 의식  눈 내리는 날의 정취를 잃은 지 오래다. 눈 내리던 날, 유년의 환희와 청춘의 설렘은 모두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생각나는 그림이 있어 도록을 펼친다. 마우베의 <북구 풍경>이다. 마우베는 고흐의 사촌 매형으로 화가의 기초지식을 전수했던 화가였다. 마우베는 고흐의 편지에서 밀레 다음으로 많이 나온 다는 이름이기도 하고.     


마우베의 <북구 풍경>을 확대를 해본다. 희미한 설원에 부부가 활사냥을 나온 듯한 풍경이다. 황량한 설원이기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지만 함께라는 사실에 우선은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가장의 고독이 느껴지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사냥감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냥의 결과는 과연 어찌 될까. 혹시라도 허탕만 치고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염려된다. 집에는 배고픈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래도 여자는 남자 곁에서 화살을 들어 대기하고 있는 듯한 실루엣이 인상적이다. 남자에 대한 믿음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마음속으로는 염려와 연민이 가득하리라 생각된다. 부디 사냥에 성공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를 하는 상상을 해볼 수밖에.      


누군가 환호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풍경이다. 이번 휴일에 환호할 일을 만들어봐야겠는데 또 코로나 핑계를 대려고 한다. 나의 한계다.    


안톤 마우베 <북구 풍경>

 

2.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의 학창 시절은 이데올로기가 내재된 교육과정이었다. 냉전과 대립은 문화 분야에서도 교묘한 눈가림이 있었다. 이과생이었던 나는 20대에 백석 시인을 처음 알았다. 88 서울 올림픽 즈음에서야 재북 작가들의 작품이 해금되었으니 말이다.     


서울서 첫 직장 생활에 몰두하던 눈 내리던 밤. 라디오 심야 방송에서 여성 게스트가 해금 시인을 소개하며 詩 한 수를 낭송하였다. 낯선 시인의 詩에서 생경한 표현이 내 두 귀를 쫑긋하게 했다. ‘푹푹 눈이 나린다’의 시구였다.     


눈 내리는 풍경을 묘사할 때 ‘눈이 펄펄 내린다’ 로만 표현했던 내 의식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마치 산울림의 노래 <아니 벌써>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아방가르드한 멜로디처럼.       


그날 라디오에서 낭송한 시의 전문은 기억하지 못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오직 ‘푹푹’과 ‘나타샤’라는 키워드만을 기억했다. 얼마 후, 이 시인의 이름이 백석이며, 낭송했던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것과 자야의 이야기까지 알게 되었다.     


한 가지 기억이 더 있다. 그날 여성 게스트의 “푹푹 눈이 나린다”의 낭송을 아쉬워했던 기억이다. 이왕이면 “푸~욱 푸~욱 눈이 나린다”로 낭송을 했으면 더욱 운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펄펄’은 설렘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푹푹’은 고요의 풍경을 느끼게 한다. 청춘의 갬성은 설렘이었지만, 가버린 청춘을 바라보는 지금의 갬성은 고요다. 그래서인지 눈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독백이 흐른다. 오늘도 추억의 편린이 ‘푸~욱 푸~욱’ 쌓이는 고요가 나를 또 흔들어 놓는다. 벌써 추억을 먹고살아야 하나?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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