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 2악장
촉촉한 봄비는 하루 종일 시골집 마당을 적셨습니다. 방에서만 지내는 게 아쉬워 우산을 쓰고 마당에 나가 커피를 마시기도 했지만, 으슬으슬한 한기에 결국은 따스한 온기를 찾아 방구석에서 오전을 보냈습니다. 오후엔 낮잠까지 자고 말았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평등하고 공정하다는 시간에게 아쉬움을 토로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처럼 주말의 오후가 낮잠으로 사라질 때입니다. 멍때리기로 보내는 시간은 아깝지 않은데 말입니다. 낮잠은 휴식이 아닌 게으름으로 여겼던 어린 시절의 인식이 아직 남아 있어서입니다.
기회의 神인 카이로스와 시간의 神인 크로노스가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번 가버린 기회와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카이로스는 준비되지 않은 인간에게는 쉽사리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카이로스는 알아보는 자에게는 쉽게 잡히지만 놓치는 자에게는 쉽게 잡히지 않도록 특이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유부단하게 자신을 놓친 자에게는 날개 달린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지고, 무작정 애원하는 그들의 팔은 단호히 뿌리친 채 인간의 곁을 지나가 버리지요. 카이로스는 낮잠 자는 사람도 외면할 것 같다는 마음이 주말의 초조함을 갖게 되나 봅니다. 낮잠도 때로는 재충전을 위한 휴식인데 말입니다.
가버린 기회와 시간에 너무 미련을 갖지 말자며 내 자신을 합리화 해봅니다. 떠나간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의 합리화입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을 결코 지울 수 없습니다.
저녁이 찾아왔습니다. 시골집에는 밤이 찾아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머니는 벌써 잠자리를 살피고 있습니다. 뜨거운 더치커피 한 잔을 들고 마루에 나가 잠이 들 마을을 내려다봅니다. 평온한 밤의 정취가 느껴집니다. 음악이 필요한 순간이기도 하고요. 주말을 놓친 실연의 기분에서 일까요? 가을도 아닌데 오늘은 슈베르트 음악이 떠오릅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비록 서글프긴 해도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근데 왜 슈베르트 음악은 서글프게 느껴질까요?
문화평론가 김갑수의 이야기에 따르면 고전 음악사의 3대 추남은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들 3인의 사진에서 뽀샵을 제거한 생얼을 상상해 봅니다. 베토벤은 험상궂은 얼굴을 했고, 모차르트는 얼굴에 비해 불균형의 기괴한 외모였고, 슈베르트는 신장 160cm가 못 되는 단신에 똥배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외모의 슈베르트는 사랑하는 연인과 연애 한 번 못한 서러움이 홍등가를 서성이게 했고, 매독으로 요절할 때까지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를 고독한 작업실에서 음악으로 표현했을 겁니다. 물론 외모 콤플렉스가 모두 다 신파조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요. 라벨을 보더라도 말입니다.
라벨의 키는 150cm 정도였지만 평소 시크한 옷차림의 스타일리시였습니다. 남자지만 향수병을 수집하고 매니큐어도 바르는 등 댄디 보이라는 애칭을 지녔지요. 라벨 또한 독신으로 살다 갔지만 구슬픈 음악보다는 댄디의 모습에서 표현되는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남기고 갔습니다.
나는 슈베르트 음악 중에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자주 듣습니다. 오늘은 분위기를 바꾸어 피아노 소나타 20번을 감상할까 합니다. 소나타 20번 중에서 2악장을 좋아합니다. 그가 생의 마지막 시기에 만든 곡이라서 그런지 에릭 사티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곡입니다. 오늘 같이 비에 젖은 감성이 드는 날에는 말입니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 2악장
연주 미츠코 우치다 (출처 유튜브)
이 곡의 연주는 오자와 세이지가 극찬한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가 어울립니다. 냉정한 분위기에서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콧대 높은 차도녀 스타일도 가끔은 이렇게 매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피아노 소나타 덕분이겠지요. 허망하게 보낸 주말 오후의 마음을 슈베르트 소나타로 위로합니다. 예술의 위대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