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라서 그런가 싶다. 프로그래밍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딴생각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에러가 반복되는 삽질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프로그래밍을 멈추고 베란다로 나가 쾌청한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다. 차가운 공기지만 폐부 깊숙이 스며든 청량감이 마음을 맑게 한다. 가을 날씨에 뜬금없이 봄날의 서정을 떠올린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요즘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외출이 자유로웠던 지난 시간들이다. 새삼 그리워지는 지난날을 그리며 한숨짓는 내 마음이 싫어진다. 커피 한 모금에 한숨을 거두려는데 주차장 한 구석에 덩그러니 세워진 승용차가 눈에 띈다. 나의 애마다. 나는 재택 근무를 하고 애마는 주차장 근무를 한다. 정체된 생각은 마음에 쌓이고 퇴색된 낙엽은 애마 위에 쌓인다. 마음을 털고 낙엽을 털기 위해 잠시 드라이브나 할까 보다.
나의 애마도 달리고 싶어한다.
갖은 상념을 애써 외면하고 뒤돌아서 다시 책상에 앉는다. 여전히 프로그래밍에 몰입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오늘의 프로그래밍은 철야 작업으로 시프트 시켜야만 할 것 같다. 자료를 덮는다.
내년 봄에 떠날 아내와의 자유여행 스케줄을 적어본다. 위드 코로나로 전환된다지만 정작 떠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벌써 여행의 설렘에 젖는다. 런던의 데미안 허스트 카페, 더블린의 문학과 기네스 공장, 비엔나의 클림프와 에곤 쉴레, 시시 황후 그리고 할슈타트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코로나의 집콕으로 얻게 된 왕초보 영어회화. 영작의 공포는 없어졌다지만 히어링의 공포는 여전하다. 긴장과 모험을 즐기는 나지만 이론과 실제의 벽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까도 셀렘의 하나이다.
코로나여 어서 떠나다오~
재택 근무를 한지 반년이 되어간다. 당초 예상보다 적응을 잘하고 있지만 일말의 아쉬움을 갖고 있다. 평일과 휴일의 구분을 허물고 보는 타인의 시선이다. 자기최면으로 의연한 태도를 견지하지만 마음속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론 이상으로 하소연이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