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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Jan 21. 2022

저녁 6시를 기다리며

오후의 햇살이 설핏해지고 응달진 창가에는 찬바람이 인다. 콜 포비아(Call phobia)까지는 아니지만 거래처 통화는 기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업무의 집중력이 떨어져 조퇴하고 싶은  날에는 더욱 그렇다. 금요일 오후의 영향일까? 마침 거래처에서는 전화 한 통 없다.      


마음의 자유가 행동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9 to 6 근무자의 자기검열 때문만은 아니다. 갈 곳을 구속하는 사회 통제 분위기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새들이 떠나간 숲만 적막하는 건 아니다. 발길이 끊긴 도시에서도 적막감을 느낀다. 조용히 Sinéad O'Connor의 노래 <A Perfect Indian>을 감상한다.      


https://youtu.be/hACTtKzFrvg



가까운 인척이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한순간 동백꽃이 지듯이 떠난 자의 마지막 모습에서 미련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언젠가는 동백꽃처럼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는 독백을 했을 따름이었다. 죽음을 생각할 때면 나는 자기최면을 건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철학 이론으로 내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      


후설의 현상학은 선험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눈에 보이는 사물만을 인정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데아는 눈에 보이는 현상적 사물은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간 사라지고 마지막엔 형이상학적인 영적 사물만 남는다는 것으로 플라톤은 외적인 세계만을 인정했다.      


다정도 病 인양 하여 짧은 생애를 마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의 그림에서도 플라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손가락은 현상학에 가까운 자연과학을 가리키지만 플라톤의 손가락은 여전히 관념적인 외적 세계를 가리킨다. 이데아의 세계야말로 영원불변의 마지막 진리인 걸까?     


세상에 영원은 없다.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 수도자의 마음이 유독 부러워지는 날이다. 허황한 도심에서 6시를 기다리며 생각나는 시 한 편. 작사가였던 박건호 시인의 <저녁 6시>로 적막감을 달랜다.


<詩>  저녁 6시

                                - 박건호 -

저녁 6시 이후는

고독한 자의 징역 시간인가

갑자기 밀려드는 자유가

나를 구속하고

도시는 감옥이 된다


저녁 6시 이후는 애매한 시간  

나만 홀로 갈 곳이 없어          

탈출하는 수형자의 자세로 서있다가

가슴을 파고드는 공허와 만난다

공중전화 앞에서 잊혀진 이름들을 생각하다가

육교 위나 지하도에서

서성이며 헤매는 나를 본다


나는 지쳐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인 채

어지러운 내가

우수의 날개를 타고 멀리 날아본다

생활을 벗은 자인가       

생활을 벗지 못한 자인가

황폐한 표정들 위에 불빛이 흐르고

거리에는 추억을 먹고사는

내가 남는다

나에게 도시는

커다란 수갑이 되어 조여들고 있다


저녁 6시 이후는

모든 것이 화려하지만

징역 시간과 같은 고독 속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해 본다

끝내 혼자일 수밖에 없는

나의 시야는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는가

도시의 이 목마름을 느끼면서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시낭송 김미숙

https://youtu.be/KwYT-L8N_OU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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